대지에 입을 맞추면,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책&생각]
자연과 전쟁해온 농업을 자연과 연결하는 농업으로
‘먹는 것’에 대한 요구가 근본적인 변화의 시작
대지에 입맞춤을
당신이 먹는 음식이 기후변화를 역전시키고 당신의 몸을 치유하며 궁극적으로 우리 세계를 구원할 수 있을까
조시 티켈 지음, 유기쁨 옮김 | 눌민 | 2만6000원
영국 과학자 제임스 러블록(1919~2022)은 지구가 스스로를 조절하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라 보는 ‘가이아 이론’을 주창했다. 모든 생명체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지구라는 행성 환경의 항상성을 유지하게끔 해준다는 주장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 속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이름이 붙은 배경에는 땅, 더 정확하게는 인간을 포함한 지구의 온생명을 먹여 살리는 토양에 대해 오랫동안 인간이 품어온 원천적인 경외심이 있다. 대지는 말 그대로 우리를 먹여 살리고, 우리는 ‘먹는 것’으로 지구와 연결되어 있다. 이 연결이 끊어지면 지구는 항상성을 잃고 알 수 없는 미래로 빨려들어갈 것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진 ‘대지에 입맞춤을’(원저 2017년 출간)은 “세계를 바꾸는 음식의 힘에 대한” 책이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조시 티켈은 “우리가 어떤 음식을 선택하는지가 우리의 문명을 만들거나 붕괴시킬 것”이라 말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부터 화학물질로 점철된 관행농업, 대기업만 이익을 보는 농업 시스템, ‘재생농업’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음식을 통해 지구와의 연결을 회복하려는 노력 등 지은이는 식량·농업·토양·기후·지구 등을 폭넓게 다루며 궁극적으론 “이 모든 것이 상호작용하는 전체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처음 측정한 찰스 데이비드 킬링(1928~2005)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여름에는 내려갔다가 겨울에는 (전보다 더 높이) 다시 올라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봄여름에는 식물이 생장하며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끌어가지만 가을·겨울에는 식물이 죽으며 탄소가 산화되어 대기 중으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이다. 토양이 중요한 무대다. 식물은 뿌리를 통해 뿌리 분비물의 형태로 탄소를 배출하는데, 이 분비물은 수조 개 미생물의 먹이가 된다. 식물과 토양이 상호작용하는 시스템이 활성화된다면, 탄소를 “토양 깊숙이 유기 미네랄 복합체의 형태로” 저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은이는 이렇게 토양에 탄소를 ‘격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종의 미래에 진정한 희망을 주는 최초의 수학적 모델”이라 말한다. 인간이 아무리 배출을 줄여도, 지구의 자기 조절 시스템에 의해 이산화탄소는 바다로 우선 흡수된다. 바다가 산성화하면 우리가 호흡하는 산소를 생산하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죽는다. 오직 바다가 아닌 토양으로 하여금 탄소를 머금게 하는 것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최선의 시나리오’란 주장이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제초제, 농약, 유전공학, 옥수수·콩·밀·쌀의 단작, 합성 질소, 좁고 사방이 막힌 가축 비육장, 경운 등 거대 돈벌이 사업” 등 여태까지 인류가 펼쳐온 농업과 그에 의존해온 삶을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자연과 전쟁을 벌이는 방식으로 식량을 생산해왔고, 이는 2차대전 뒤 독일의 화학 지식과 미국의 기계 설비가 만난 이른바 ‘녹색 혁명’ 시기에 절정을 이뤘다. 농약과 제초제 등 화학물질을 토양에 뿌려대고 거대한 트랙터로 토양을 갈아엎으며 생산력을 늘렸다. 그러나 1950에서 1990년 사이 연평균 3.5퍼센트씩 늘었던 전세계 곡물 생산량은 1990~2010년 단지 1.3퍼센트만 느는 등 그 한계가 뚜렷하다. 농부들에게 주는 정부 보조금은 옥수수·콩 등 산업화된 작물만 재배하도록 강요하고, 그 이윤은 고스란히 대형 식품·화학 기업들에 돌아간다. 화학물질과 함께 투입되는 엄청난 물은 지구 곳곳에서 사막화를 일으킨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가진 식량 생산 시스템으로 말 그대로 우리 자신을 죽이고 있다.”
지은이는 이렇게 자연과 전쟁을 벌이는 관행농업을 거부하고 자연과의 연결을 회복하려는 재생농업에 매진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세상에서 가장 큰 유기체는 토양 속 식물의 뿌리에 서식하는 균근균(菌根菌)으로, 이처럼 수많은 미생물들이 연결된 토양 속 네트워크야말로 생명 활동의 근원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먹을 때 내장 속 박테리아가 그것을 분해하지 않으면 영양으로 흡수할 수 없듯, 토양의 생산력은 그 깊숙이 자리잡은 다양한 미생물들의 상호작용에서 온다. “식량 생산이 증가하는 동시에 효율이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현대화된 식물이 토양 속 미생물과 함께 일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학적인 관행농업은 토양 속 미생물의 다양한 시스템을 없앤다. 그럼 유기농업은 괜찮을까?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지만 경운을 (그만큼 더) 많이 해야 하는 ‘유기농 딜레마’가 있다. 땅을 갈아엎는 행위는 토양 위쪽 층을 압축하여 식물 뿌리와 물이 침투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재생농업은 화학물질을 쓰지 않고 땅을 갈아엎지 않는 대신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 자원인 자연의 복원력을 활용하려는 시도다. 다양한 작물의 재배와 가축의 방목이 어우러진 유기농·무경운 농업은 식물과 미생물, 곤충들이 공생하는 건강한 토양을 만든다. 토양은 바다와 대기 대신 탄소를 머금어 지구 환경을 선순환시키는 결정적인 구실을 할 것이다. 또 풍요로운 작물로 사람들에겐 건강을, 농부에겐 보조금이 아닌 진짜 수익을 가져다줄 것이다. 무엇보다 지은이가 강조하는 것은 이 모든 게 궁극적으로 “먹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농장에서 식탁으로’가 아니라 오히려 ‘식탁에서 농장으로’이다.” 우리가 건강한 토양에서 건강히 자라난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겠다고 선언하며 “접시를 뒤집어야”, 비로소 가장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우리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지은이는 페르시아 시인 루미(1207~1273)의 시구를 빌려 “우리가 생명을 원한다면, 지금은 우리 자신을 낮추고 대지에 입맞춤할 때”라고 말한다. “토양이 우리를 구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먼저 우리가 토양을 구해주어야 할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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