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이언 매큐언의 단 하나의 SF…거짓 없는 세계의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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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는 사랑과 완벽한 공식적 해결의 순간뿐 아니라 긴장, 은폐, 폭력도 가득합니다. 하지만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 완성되면 우리는 서로를 너무 잘 이해하게 될 것이기에 문학은 불필요해지겠죠. 우리가 서로의 마음속에서 살게 되면 서로를 속일 수 없을 겁니다."
어떤 사정에도 "진실이 전부"라는 아담이 '정의를 위한 거짓'을 두둔하는 이들과 같은 세계를 공유할 수 있을까.
결과물이 바로 '거짓 없는 세계'를 희구하는 아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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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기계들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l 문학동네 l 1만6800원
“소설에는 사랑과 완벽한 공식적 해결의 순간뿐 아니라 긴장, 은폐, 폭력도 가득합니다. 하지만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 완성되면 우리는 서로를 너무 잘 이해하게 될 것이기에 문학은 불필요해지겠죠. …우리가 서로의 마음속에서 살게 되면 서로를 속일 수 없을 겁니다.”
인조인간 아담이 지향하는 유토피아의 실체다. ‘인간의 정신’이란 게 있다면 고유한 ‘아담의 정신’도 있을 터. 거칠게 추리자니, 거짓 없는 세계, 오해 없는 세계가 바로 ‘인공의 정신’이다.
소설 ‘나 같은 기계들’ 속 이야기다.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75)이 일평생 유일하게 쓴 에스에프(SF) 소설이다. 2019년 작품으로 ‘현대 영문학의 거장’이 나이 일흔이 넘어 도전한 장르문학이다. ‘엽기 이언’으로도 불리고, 어린이소설까지 썼던 그가 못다 한 탐색이 있던 걸까.
1980년대 런던, 인조인간이 상용화된다. 32살 찰리 프렌드는 유산 덕에 아담을 구매한다. 성행위도 가능할 만큼 정교하지만, 470쪽짜리 사용설명서를 따라 어떻게 설정하느냐로 아담의 정체성은 형성된다.
이언은 찰리를 대신해 첫번째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대담하지도, 내성적이지도 않고 가끔 과거 후회하고 미래 불안해하는 대부분의 일상적 태도를 유형화된 심리학으로 포착할 수 있는가. 뒤에 드러나는바, 아담은 설정이 아니라 딥러닝으로 자신을 만들어간다.
찰리가 아파트 위층에 사는 22살 지성미를 갖춘 미란다에게 연정을 품을 즈음, 아담과 미란다의 관계도 묘해진다. 미란다는 “셰익스피어만큼 방대한 언어 저장고를 가진” 아담에게 매료되고, 아담은 수집한 데이터로 찰리에게 미란다를 믿지 말라 경고한다.
사랑, 질투, 거짓 따위로 점철된 사실상의 삼각관계는 인간과 인공지능간 대립과 화해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것과 다를 바 없음을 에두른다. 가치관, 문학관, 서로가 서로를 매김하는 정체성 등을 두고 셋이 펼치는 대화는 자주 시선을 붙잡는다.
절정이 ‘죄와 벌’의 형성과 무게에 대한 입장차다. 미란다는 파키스탄에서 이민 온 소싯적 친구 마리암의 복수를 대신해 한 남자를 자신의 강간범으로 무고한다. 어떤 사정에도 “진실이 전부”라는 아담이 ‘정의를 위한 거짓’을 두둔하는 이들과 같은 세계를 공유할 수 있을까.
이언은 시공간을 과거로 돌려 대체역사의 서사를 꾀한다. 현실과 달리, 영국 대처 정부는 포클랜드 전쟁에서 패하며 민심을 잃는다. 존 에프(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죽지 않는다. 1950년대 동성애 혐의로 체포되어 감옥 대신 화학적 거세를 받고 결국 자살한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1912~1954)은 소설에서 감옥을 선택하고 “모든 선한 것의 왜곡”으로 자신이 간주되는 수모를 감당하며 연구에 몰두한다. 결과물이 바로 ‘거짓 없는 세계’를 희구하는 아담이다.
이언은 이 소설을 두고 “현실보다 약간 나은 세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가장 첨예하게 가장 고루한 이슈라 할, 인공지능시대의 윤리를 발랄하면서도 예리하게 해부하는 매큐언식 에스에프의 실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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