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책에서 위로를 받는다면 꽤나 근사하지 않겠어요?”[심완선의 낯설지만 매혹적인]

2023. 8. 18.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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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인공지능(AI)과 로봇, 우주가 더는 멀지 않은 시대입니다.

다소 낯설지만 매혹적인 그 세계의 문을 열어 줄 SF 문학과 과학 서적을 소개합니다.

강연실, 우아영, 두 저자는 과학책을 읽으며 편지 형식으로 글을 주고받는다.

그러니까 현재로서는 스컬리 같은 여성 과학자로 살아남으려면 현실적으로 아주 많은 요소가 필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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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실, 우아영 '평행세계의 그대에게'
편집자주
인공지능(AI)과 로봇, 우주가 더는 멀지 않은 시대입니다. 다소 낯설지만 매혹적인 그 세계의 문을 열어 줄 SF 문학과 과학 서적을 소개합니다. SF 평론가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해 온 심완선이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미국 드라마 '엑스 파일' 주인공인 스컬리(오른쪽·질리언 앤더슨 역)는 여성 과학자의 매력적인 이미지를 만든 인물이다. 캐치온 제공

SF 연구를 찾다 보면 종종 허구의 인물이나 사건이 과학기술에 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꾼다는 증언을 만난다. 내가 좋아하는 사례는 ‘스컬리 효과’다. 오랫동안 인기리에 방영했던 SF 드라마 '엑스 파일'의 주인공 중 여성 과학자 ‘스컬리 박사’가 여성들을 이공계로 이끌었다는 내용이다. 지나 데이비스 연구소에서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엑스 파일'의 에피소드를 8회 이상 시청한 집단은 그렇지 못한 집단보다 여성의 이공계 진출에 훨씬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응답자 본인이 이공계에 진출한 비율도 높았다. 또한 이공계에서 일하는 여성 약 2/3가 스컬리를 개인적인 롤모델이라고 밝혔다. 똑똑하고 강하고 지적인(smart, strong, intelligent) 인물로서 중요한 이미지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책 '평행세계의 그대에게'를 읽으며 나는 ‘똑똑하고 강하고 지적인’이라는 말을 되새겼다. 강연실, 우아영, 두 저자는 과학책을 읽으며 편지 형식으로 글을 주고받는다. 학교도 분야도 다르지만 ‘이쪽’에 발을 디딘 사람으로서 둘은 반갑게 경험을 공유한다. 공대에 여자 화장실은 한 층 걸러 있었다는 이야기에는, 여대에 있는 공대에는 여자 화장실은 많았지만 개설된 전공이 얼마 없었다는 맞장구가 돌아온다. 그리고 이들은 ‘똑똑하고 강하고 지적인’ 사람으로 학계에 남지 못하고(충분히 그런데!) ‘새는 파이프라인(leaky pipeline)’이 되었다는 인식을 공유한다.

평행세계의 그대에게·강연실, 우아영 지음·이음 발행·284쪽·1만8,000원

새는 파이프라인은 여성의 진로 이탈을 의미하는 말이다. 책에 등장하는 '평행 우주 속의 소녀'는 여성을 이공계에서 이탈하게 만드는 다양한 사회적 요소들을 분석한다. '벤 바레스: 어떤 트랜스젠더 과학자의 자서전'은 여성 과학자가 권위 있는 자리로 갈수록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를 폭로한다. 남성 과학자들은 “개인의 실력은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만연한 환경에서는 제대로 인지될 수도 없다”(205쪽)는 사실을 간과한 채, 여성도 능력이 있다면 인정받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현재로서는 스컬리 같은 여성 과학자로 살아남으려면 현실적으로 아주 많은 요소가 필요한 셈이다. 복합적으로 얽힌 현실을 바라보는 두 저자의 편지에는 질문이 퐁퐁 솟는다. “연실씨, 근본적으로 과학계에 여성이 필요한 이유라는 게 존재할까요?”(23쪽)

다양성이 갖춰지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문제는, 실험 결과가 왜곡되는 경우부터 연구비가 편파적으로 집행되는 모습까지 이미 연구되어 있다. '왜 과학을 믿어야 하는가?'는 과학계의 다양성이 높아져야 과학의 신뢰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들의 질문은 다음으로 넘어간다. 그럼 여성 과학자는 다양성과 신뢰성을 위해 무언가 증명해야 하는 걸까요?

이에 대한 답은, 그냥 좋아서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이다. 특별하게 똑똑하고 강하고 지적이지 못하더라도 과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두 저자의 과학책 읽기는 경험담에서 점점 인류 공동의 미래로 나아갔다가 ‘별거 없이 읽기’로 귀결한다. 평이하고도 힘이 서린 결론이다. 이에 더해 책에 실린 다정한 소제목을 소개하고 싶다. “과학책에서 위로를 받는다면 꽤나 근사하지 않겠어요?”

심완선 SF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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