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하게 그리는 ‘우리’… 이우성, ‘해질녘 노을빛과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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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 한 무리가 어깨동무 한 채 정면을 바라본다.
그는 지난 2012년 내놓은 회화 '정면을 응시하는 사람들'을 비롯해 무표정한 인물화를 주로 그려 '88만원 세대'(월급 88만 원을 받는 비정규직 세대)의 정서를 대변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각기 키가 다른 모델을 비슷한 크기로 표현해 이 같은 분위기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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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성 힘”… “유명인 아닌 가까운 존재 그려”
젊은이 한 무리가 어깨동무 한 채 정면을 바라본다. 편안한 인상과 웃는 표정이 익숙하다. '턱스크(턱에 마스크를 걸쳐 쓰는 행위)'도, 일상복 차림도 그렇다. 어른 틈에 낀 어린이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낯선 면도 있다. 어깨동무한 이의 대형은 시위대가 ‘스크럼’을 짠 것도 같다. ‘팔뚝질’(손을 치켜들며 정치 구호를 외치는 동작)하는 듯한 사람도 있다. 그런데도 이들의 표정은 성나지 않았다. 민중미술의 영향력이 느껴지지만 전형적인 민중미술작품 같지는 않다.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열리고 있는 화가 이우성(40)의 개인전 ‘여기 앉아보세요’에 나온 신작 ‘해질녘 노을빛과 친구들’(2023) 얘기다. 그는 지난 2012년 내놓은 회화 ‘정면을 응시하는 사람들’을 비롯해 무표정한 인물화를 주로 그려 ‘88만원 세대‘(월급 88만 원을 받는 비정규직 세대)의 정서를 대변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해질녘 노을빛과 친구들’의 독특함은 작가가 주로 실존 인물을 그린다는 데 힌트가 있다. 이는 작가가 중·고교 동창 12명, 한 동창의 자녀 한 명을 본인의 모습과 함께 그린 것이다. 몇몇 동창의 모습은 사진을 받아 보고 그렸다. 작가는 예나 지금이나 있는 그대로를 그렸다고 하는데 누가 봐도 이전 작품보다 따뜻한 느낌이다. 시대가 변했고, 나이도 들었다. 각기 키가 다른 모델을 비슷한 크기로 표현해 이 같은 분위기를 전달했다. 가로 6m, 세로 2.6m 걸개그림이지만 위압감을 주지 않는다. 노을 낀 하늘 같은 주황빛 배경과 바다 같은 푸른 배경도 이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물감이 금세 뭉치기 십상인 아크릴화를 천에 그렸는데도 인물·옷의 주름, 명암 등 표현이 세밀해 사실성이 두드러진다.
작가는 “구체적인 사람을 그림으로 이들의 내밀한 ‘관계’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했다. “구체성이 가진 힘이 무언가 다른 사람(관객)과의 경험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회화 ‘엎치락뒤치락’(2023)에서도 작가는 친족을 모델로 가족애를 수박, 참외, 김밥 등 친숙한 이미지와 함께 표현했다.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을 겪으며 더 강화된 개인주의 시대에 사람의 관계에 집중하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 독특한 작품세계는 관객과 또 한번 관계 맺기를 한다.
이진명 미술평론가(학고재 사외이사)는 “이우성은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친구, 가족 등 나에게 가까운 존재를 그린다”며 “거대담론이 사라진 탈역사의 시대에 내가 사는 이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과의 관계 이야기, 사람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 13일까지.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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