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투자처 가뭄에 분위기도 어수선…사모펀드 新보릿고개
빈익빈 부익부에 식어버린 열기
매력적인 투자처도 많지 않아
자금 있어도 과감한 투자 장고
미중관계 악화…전략 설정 난항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국내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하반기 들어 잠잠하다. 코로나19 이후 굵직한 인수합병(M&A) 건에 이름을 올리던 시기를 지나 현재는 열기가 식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일각에서는 일부 운용사만 분주하고 나머지 운용사들은 정반대의 상황을 겪다 보니 ‘보릿고개’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최근 자본시장은 일부 PEF 운용사가 주도하는 흐름이 짙어지고 있다. 유동성 폭발로 중견 PEF 운용사들이 거액을 확보하고, M&A에 참전하던 시기를 지나 초대형 소수 운용사만 투자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올 들어 1조원을 웃도는 M&A를 이끌어낸 국내 PEF 운용사는 MBK파트너스와 한앤컴퍼니, UCK파트너스 등 3곳에 불과하다. 투자와 엑시트(자금회수)가 싸이클이라는 게 있다지만, 예년과 비교해 시장 참여자 숫자가 확 줄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투자뿐만 아니라 펀딩(자금모집) 측면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이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발표한 기관전용 PEF 현황(올해 3월 기준)에 따르면 올해 모인 PEF의 신규 조달 자금은 총 5조1629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3월(3조9336억원)과 비교해 31%가량 증가한 규모다.
그러나 운용사별 모집 규모를 보면 스틱인베스트먼트가 1조2800억원 규모의 ‘스틱오퍼튜니티 3호’ 펀드 결성에 이어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 6684억원 △UCK파트너스 6360억원 등의 펀드를 조성됐다. 세 운용사의 펀딩 합계가 전체 자금의 절반 가까운 수치를 차지했다는 점은 특정 운용사에 자금이 집중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자 ‘우리도 과감하게 베팅해보자’는 분위기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유의미한 자금을 확보한 운용사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대형 투자에 발목을 잡힐 리스크를 고려하다 보니 차선책을 도모하는 전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최근 PEF 운용사들이 바이아웃 보다는 그로스 등 에쿼티 투자에 집중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휴가철 등 계절적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최근에 유망 투자처가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상반기 광풍이 풀었던 2차전지 섹터에 PEF 운용사들이 투자를 집중한 이유도 업사이드(상승여력)가 충만한 투자처가 많이 줄었음을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최근에는 미·중간 신냉전이 격화하면서 투자 방향을 설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바이든 정부는 이달 자국 PEF 운용사와 벤처캐피탈(VC) 등 미국 자본이 중국의 첨단 반도체와 양자 컴퓨팅, 인공지능(AI) 등 3개 분야에 투자하는 것을 규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미국 정부가 첨단 반도체와 양자 컴퓨팅, 인공지능 등 3개 분야로 투자 제한 범위를 한정했지만, 이는 사실상 중국 투자에 전면 제동을 걸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자본이 빠지면서 국내 운용사들에게 중국 투자 기회가 열리는 것 아니냐 생각할 수 있지만, 업계 의견은 그렇지 않다. 미국과 여러 방면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에도 어떤 형태로든 동참 압박이 제기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모습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당장 개선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자본시장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이제 막 시작한데다 M&A 시장에 나올 채비를 하는 유망 매물 소식도 요원해서다. 운용사들은 무리한 투자보다 자금 모집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한 PEF 운용사 관계자는 “투자처가 마땅치 않다 보니 괜한 딜소싱보다는 일단 앞으로 나올 기관 콘테스트에 주력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훈 (sk4h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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