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새 하원 의장에 사회당 출신…좌파 재집권 가능성 커졌다
지난달 조기 총선을 치른 스페인의 새 하원 의장에 사회노동당(PSOE) 소속 의원이 선출되면서 좌파가 재집권할 가능성이 커졌다. 총리도 하원 의장과 마찬가지로 의회내 투표로 뽑히기 때문에, 이번 투표 결과가 그대로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노동당은 지난 총선에서 우파 국민당(PP)에 밀려 1당 자리를 내줬지만, 국민당이 이끄는 우파 진영이 과반(176석) 획득에 실패하면서 군소 정당의 표심에 따라 좌파와 우파 모두 집권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돼 왔다.
스페인 하원은 17일(현지시각) 총 350명의 재적 의원 중 과반이 넘는 178명의 찬성으로 사회노동당의 프란치나 아르멩골(52) 사회당 의원을 새 하원 의장으로 선출했다. 가장 많은 의석(137석)을 가진 우파 국민당의 후보 쿠카 가마라는 139표를 얻는데 그쳤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극우 성향 정당 복스(Vox)가 가마라 지지를 거부하고 독자 후보에 투표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스페인에서 하원 의장은 국왕과 총리에 이어 서열 3위의 요직이다. APF 통신은 “아르멩골 의원이 의장직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사회노동당과 좌파 연합 수마르(Sumar) 등 좌파 외에도 지역 정당, 특히 카탈루냐 분리주의 정당들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회노동당은 지난 총선에서 각각 7석을 확보한 ‘카탈루냐를 위해 함께(Junts)’와 ‘카탈루나 공화좌파당(ERC)’과 손잡고, 이들이 요구한 카탈루냐어의 유럽연합(EU) 공식 언어 인정과 스페인 의회에서 사용 등 4가지 요구사항을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르멩골 의원은 카탈루냐어를 쓰는 발레아레스 제도 출신이기도 하다.
스페인 우파와 좌파 진영은 총선 이후 군소 정당과 협상 끝에 각각 171석을 확보했다. 하지만 이는 총리 선출과 정부 구성에 필요한 과반 의석에 5석 못 미친다. 결국 카탈루냐 분리주의 정당들이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된 셈이다. 유로뉴스는 “총리 선출 과정에서도 이번과 같은 구도가 반복되면 사회노동당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연임하고 좌파 연정이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몸 값이 높아진 카탈루냐 분리주의 정당들은 더 큰 요구를 내놓고 있다. ‘카탈루냐를 위해 함께’ 당은 이날 “차기 정부를 구성할 총리 선출 투표에서도 우리의 지지를 원한다면 (사회노동당이) 카탈루냐를 위해 더 많은 약속을 해야 한다”고 엄포를 놨다. 이중에는 지난 2017년 10월 카탈루냐 독립 투표에 나섰다가 처벌받은 카탈루냐 분리주의 정당 소속 정치인들에 대한 사면·복권, 카탈루나의 자결권을 위한 새 국민 투표 허용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카탈루냐 분리주의 정당들은 그러나 좌파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다. 우파와는 손을 잡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극우 성향의 복스가 카탈루냐의 분리 독립 움직임에 결사 반대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일간 엘파이스 등은 “이번 기회에 사회노동당 정부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양보 받는 것이 분리주의 정당들의 목표일 것”이라고 관측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