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돈 잔치에 경쟁력 잃은 은행들, 디지털 경쟁자에 잡아먹힐 수도
손쉬운 고금리 이자 장사로 돈을 번 은행들이 성과급·희망퇴직금 명목으로 거액을 임직원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작년 말 5대 시중은행이 1조원이 넘는 성과급을 지급한 데 이어 최대 36개월 치 월급을 얹어주는 희망 퇴직을 잇따라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5대 은행의 희망 퇴직금을 합한 1인당 퇴직금은 평균 5억4000만원에 달했다. 최대 11억3000만원을 퇴직금으로 받는 은행원도 나왔다.
심지어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30대 은행원까지 희망 퇴직 대상에 포함시켜 목돈을 안겨 주었다. 정부가 쌓아준 진입 장벽 안에서 시장을 독과점하면서 편하게 돈을 번 은행들이 위기에 몰릴 때는 국민에게 손을 벌리더니 수익이 났다고 자기들끼리 돈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은행들의 순익 중 이자 수익 비율은 94%에 달했다. 한은의 금리 인상에 편승해 예금 금리보다 대출 금리를 더 빠르고 많이 올린 결과다. 예금·대출 금리 차(差)로 국내 은행이 올린 수익성은 일본·프랑스 은행들의 3배에 이른다. 반면 수수료·운용 보수 등 비이자 수익의 비율은 5.7%에 그쳤다. 미국 은행들은 이 비율이 28%에 이르고, 일본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은 무려 50%에 육박한다.
외환 위기 이후 20여 년간 금융의 글로벌화를 외쳤지만, 국내 은행들의 해외 사업 비율은 10%대에 머물러있다. 선진국 은행은 해외 비율이 30~40% 이상이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국내 시장에 안주해 땅 짚고 헤엄치기식 영업만 하고 있다.
은행들이 정말로 돈을 써야 할 곳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 디지털 전환을 가속하고 다양한 영업 모델 개발과 해외 사업 확대에 투자해야 한다. 실력은 형편없는 은행들이 틈만 나면 자기들끼리 돈 잔치를 벌이고 있으니 경쟁력이 생길 리 없다. IT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생 핀테크 업체들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은행들이 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새로운 경쟁자들에게 잡아먹히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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