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등산화 빌려주는 나라는 처음이지?
지난 16일 오전 서울 강북구 우이동 서울도심등산관광센터.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오가는 사람 절반이 브라질·일본 등에서 온 외국인. 등산 장비도 없이 저마다 반바지에 민소매 차림이었다. 이들은 센터에서 등산화를 빌려 신고는 북한산으로 향했다. 이곳에선 맨몸으로 와도 등산화와 등산복 등을 빌려 산을 탈 수 있다. 등산화는 2200원이면 빌릴 수 있다.가이드가 이끄는 등산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아들 셋과 함께 와 서울을 여행 중인 간쳉콴(48)씨는 “북한산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도 찍으려고 왔다”고 했다. 캐나다 관광객 크리스토퍼 보(26)씨는 “세계 여러 나라를 가봤지만 관광객에게 등산화를 빌려주는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라며 “등산하고 바로 시내에 냉면 먹으러 갈 계획”이라고 했다.
서울시가 북한산이나 인왕산, 북악산 등 서울의 도심 산을 대표 관광 상품으로 만든다. ‘K마운틴’이란 관광 브랜드도 만들어 쇼핑이나 고궁 관람 등에 치우친 외국인 관광객 수요를 다변화하겠다는 것이다. 길기연 서울관광재단 대표는 “K팝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의 요리, 패션, 자연 등을 궁금해하고 체험하려는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다”며 “그중 새로 떠오르는 콘텐츠가 등산”이라고 했다.
핵심은 짧은 일정으로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손쉽게 등산을 즐길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 시작이 작년 6월 문을 연 도심등산관광센터다. 올 들어 센터를 찾은 외국인은 총 2407명. 단순 계산하면 하루 10명꼴인데, 코로나 종식 후엔 하루 20~30명으로 늘었다. 예전에는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이 주를 이뤘다면 요즘은 자유여행 온 외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다.
국적도 다양하다. 올해 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한 외국인 809명 중 미국인이 112명(13.8%)으로 가장 많고, 이어 싱가포르인(13.3%), 중국인(9.1%), 프랑스인(7.9%) 등 순이다. 연령별로는 20·30대가 85%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성별은 여성이 71%로 남성보다 훨씬 많았다. 이준호 센터장은 “SNS나 스마트폰 앱을 보고 찾아온 20·30대 여성 외국인 관광객이 특히 많다”며 “최근에는 미국 여대생들이 졸업여행으로 북한산 등산을 했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새만금 잼버리에서 조기 철수한 스위스 스카우트 대원 84명도 북한산을 찾았다.
‘미트업’ 등 모임 정보 공유 앱에서 서울 하이킹은 이미 인기 콘텐츠다. ‘북한산에서 하이킹을 하자’는 글이 올라오면 금방 10~20명씩 신청자가 모일 정도다. 마리옹(24·프랑스)씨는 “서울 여행 도중 모임 정보 앱을 보고 강남에 가려다가 북한산에 오게 됐다”고 했다. 모임·체험 위주로 관광 패턴이 바뀌면서 등산이 주목받고 있다는 뜻이다.
서울관광재단은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등산관광센터를 계속 늘려나갈 계획이다. 오는 9월 종로구 청와대 인근에 인왕산과 북악산을 겨냥한 등산관광센터 2호점을 낸다. 이어 내년에는 관악산에 등산관광센터를 만드는 계획을 검토 중이다. 올 하반기부터 북한산 능선을 따라 암벽을 등반하는 ‘리지 클라이밍’을 시범 운영하는 것을 시작으로, 경복궁을 한 바퀴 도는 트레킹 등 체험 프로그램도 다양화할 계획이다.
서울의 도심 산이 주목받는 이유는 다양하다. 줄리아 웨더스푼(34)씨는 “미국은 하이킹 한번 하려면 보통 도시에서 차를 타고 몇 시간씩 가야 하는데 서울 하이킹은 반나절이면 충분하고 뚜벅이 여행객들에게도 부담없는 코스”라고 했다. 일본 도쿄에서 온 미쓰이(40)씨는 “서울에선 ‘북한산 백운대’에서 본 도심 풍경이 최고”라고 했다.
SNS에서는 이미 백운대 바위 위에서 서울 시내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밤에 성곽을 따라 인왕산을 올라가는 사진 등이 화제다. 관광재단 관계자는 “앞으로 몰려올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까지 산으로 집중 유치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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