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우리를 탈출한 사자의 마음

김희선 소설가·약사 2023. 8. 1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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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동물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언어 사전을 만들고 싶었다. 과거형으로 쓴 문장이지만, 지금도 이 꿈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다.

만약 그런 사전을 만든다면, 가장 먼저 고라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밤마다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 어딘가에 외로이 선 채 “꾸웨에엑~” 기묘한 소리를 내는 그들의 언어를 연구하여, 노트에 정확히 기록하고 싶다. 길게 끄는 울음은 “이리 와”라는 뜻, 조금 더 짧은 울음은 “저리 가 줄래?”라는 뜻. 이런 식으로 적어서 고라니 언어 사전을 만든 다음엔, 로드킬이 자주 일어나는 도로변에 고라니용 확성기를 설치할 생각이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위험천만한 길을 순진무구한 얼굴로 기웃대는 고라니들에게 “꾸웨엑” 또는 “꾸우우욱” 같은 소리로 안내 방송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그것은 그저 기괴한 울음소리로 들릴 테지만, 고라니들에겐 “이쪽으로 오면 위험하니, 얼른 산속으로 돌아가렴”이라는 말로 들릴 테고, 그러면 아무 것도 모르고 도로에 발을 디뎠다가 죽음을 맞는 고라니도 줄어들 것이다.

고라니만이 아니라, 동물원에 살고 있는 사자나 얼룩말, 말레이곰 같은 동물들의 언어도 연구하고 싶다. 동물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들이 내는 울음소리를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다면, 그래서 녀석들의 언어로 말을 걸 수 있다면, 농장을 탈출한 암사자를 무사히 구출할 수도 있을 테니까. 사자들의 언어로 방송하며 “그 지옥 같은 쇠우리에서 지내지 않도록 어떻게든 도울 테니, 그만 돌아오렴” 하고 설득하면, 암사자는 돌아오지 않았을까. 치욕스러운 삶을 끝내기 위해, 인간이 겨눈 총구에 자신을 내주는 대신.

동물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언어 사전을 완성하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세계는 말이 통하는 동물 수만큼 다양하고 풍부해질 것이며, 인식의 지평은 우주보다 넓어질 테니까. 그러고 보면, 혹시 우리는 그들의 말을 일부러 이해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뼈만 남은 사자가 건네는 말, 버려진 개가 뜬장에서 외치는 비명, 평생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알을 낳는 닭, 강제로 교배되는 돼지와 소. 그 모든 동물이 내는 울음을 알아듣고 이해한다면, 인간은 귀를 막지 않고는 단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할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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