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임옥상, 혐의 부인하다 피해자가 녹취록 내자 자백
‘민중미술가’ 임옥상(73)씨가 10년 전 성추행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오래전 벌어진 성추행 사건이 유죄로 판단된 데에는, 임씨가 범행 직후 피해자에게 추행 사실을 인정한 녹취록이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단독 하진우 판사는 17일 임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 판사는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을 수강하라는 명령도 내렸다.
‘민중미술계 거목’으로 활동했던 임씨는 2013년 8월 강제추행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피해자는 임씨가 운영하는 미술연구소 직원이자 미술계 후배인 A씨였다. A씨는 지난 6월 강제추행 공소시효(10년)를 두 달 남기고 임씨를 고소했다.
A씨는 임씨의 선고 전 재판부에 자신이 고소를 결심한 계기와 그간의 심경 등을 적은 글을 제출했다고 한다. 이 글에는 “임씨가 성추행을 저지른 후에도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작품을 만드는 등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며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며 엄벌을 원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임씨는 범행 3년 후인 2016년 서울 남산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기억의 터’를 설계하고 만든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임씨는 경찰 수사 단계에서부터 혐의를 일부 부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가 재판이 열리자 갑자기 태도를 바꿔 모든 혐의를 인정한 것이다. 임씨가 입장을 바꾼 배경에는 A씨가 제출한 녹취록이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임씨가 사건 직후 자신의 추행 사실을 인정하는 음성 파일과 녹취록을 증거로 냈는데, 임씨 측이 이를 깨뜨리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임씨는 지난달 6일 공판에서 “10년 전 순간의 충동과 잘못된 판단으로 피해를 줬다”며 “반성하고 사과를 드린다”고 했다.
하 판사는 이날 선고 재판에서 “임씨가 피해자를 추행했다는 범죄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있고, 제출된 증거들에 의하면 자백이 뒷받침된다”며 “임씨와 피해자의 관계와 추행 정도, 범행 후 경과 등에 비춰보면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질책했다. 이어 “피해자가 이 사건 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이고, 피해자에게 용서받지도 못했다”고 했다.
다만 하 판사는 “임씨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고, 피해자를 위해 2000만원을 공탁한 점 등을 양형에 참작했다”고 밝혔다. 선고 내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임씨는 선고 후 말없이 퇴정했다.
A씨를 대리한 김재련 변호사는 “공탁금을 수령하지 않겠다는 뜻을 재판부에 밝혔는데, 이를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한 것은 유감스러운 대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권력을 가진 미술계 거장을 상대로 용기 내 (성추행) 문제 제기를 하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미술계 후배이자 종사자인 피해자가 일하는 공간에서 안전이 위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서울시는 이날 임씨의 유죄 선고에 따라 ‘기억의 터’를 비롯한 시립 시설 내 임씨의 작품을 조속히 철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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