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모든 가구가 ‘태극기 휘날리며’
광복절이었던 지난 15일 서울 동작구의 사당해그린아파트. 총 79가구 중 여름휴가 등으로 집을 비운 4~5가구를 제외한 전 가구에 태극기가 게양됐다. 이날 청소를 위해 아파트를 찾은 홍모(65)씨는 “요즘 태극기를 건 아파트가 드문데, 빼곡하게 걸려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 아파트의 전 가구 광복절 태극기 게양은 이도연(73) 관리소장의 제안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이 소장은 “관리소장으로 일한 지난 7년 동안 꾸준히 태극기 게양 안내 방송을 해도 다는 집이 적어 안타까웠다”고 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주민 대표의 동의를 받고 아파트 관리 여비로 태극기를 구입했다. 비용 절약을 위해 제조 업체에서 직접 태극기를 샀다고 한다. 이 소장과 관리실 직원은 광복절 전날인 14일 각 가구에 태극기를 나눠주고 태극기 게양을 독려했다.
이 소장이 태극기 게양 제안을 하게 된 건 주민 이강찬(93)씨의 영향이 컸다. 2005년부터 이 아파트에서 살아온 이씨는 6·25 참전 용사 출신이다. 이씨는 “20년 가까이 이곳에 살면서 꾸준히 봐왔는데, 최근엔 단 두 가구만 태극기를 단 해도 있었다”며 “모두가 태극기를 달았으면 좋겠다고 여러번 건의했는데 관리소장이 발 벗고 나서줘 고맙다”고 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6·25 전쟁을 모두 겪은 노인들에게 태극기 게양이 당연해도 젊은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안다”며 “과거가 없었다면 현재도 없다는 걸 알리기 위해 게양을 제안했는데 모두가 동참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아파트 주민들은 자랑스럽다는 반응이다. 주민 왕모(64)씨는 “집에 태극기가 있지만 마침 나눠주셔서 새로 받은 걸로 게양했다”며 “이 아파트에 사는 6년 동안 가장 태극기가 많이 달려 흐뭇하고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또 다른 주민 박모(46)씨도 “관리소장님이 태극기를 나눠주시며 게양법과 위치까지 자세히 안내해줘서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태극기 게양 추진 당시 일부 주민의 우려도 있었다고 한다. 특정 단체의 집회 모습을 보고 태극기를 정치적 상징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 소장은 “처음에는 우려했던 주민들도 전 가구가 태극기를 게양하자 뭉클하다고 전했다”며 “‘소장님 최고!’라는 말을 들었을 때가 가장 뿌듯했다”고 했다. 이 아파트는 앞으로 국경일과 기념일, 조의를 표하는 날마다 입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줄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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