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 사태 벌어져서야 뒤늦게 문제점 지적… 사전 취재 부실 반성해야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김도연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가 지난 14일 정례 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지면과 온라인 기사에 대해 토론했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김별아(소설가), 김재련(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민세진(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박상욱(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정윤혁(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위원과 조중식 편집국 부국장이 참석했다. 고산(에이팀벤처스 대표), 금현섭(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김태수(변호사), 장부승(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한준(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위원은 따로 의견을 보냈다.
[잼버리]
-새만금 잼버리 문제가 터지기 전에 개막 소식을 다룬 8월 2일 자 <전 세계 청소년 4만명 몰려와 ‘잼버리 특수’>(A1면) <158국 청소년들 모여… 꿈·우정·문화 나누다>(A16면)에는 대원들이 활짝 웃는 사진과 함께 조직위가 밝힌 각종 프로그램 등 장밋빛 전망을 전했다. 이런 허황된 내용은 금방 들통났다. 다음 날인 8월 3일 자와 4일 자 기사에는 온열 질환자 대거 발생, 부실한 샤워장, 부족한 화장실 등으로 분위기가 갑자기 확 바뀌었는데, 그 전에 그런 경고나 우려 같은 게 한마디도 없었다. 현장을 취재했다면 화장실이나 폭염 등 문제점이 안 보였을까. 기자는 현장에 있으면서도 처음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썼다. 이후 사태가 심각해지자 뒤늦게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 행태를 보였다.
-잼버리 파행 이후 각 언론은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지방정부가 무능하고 탐욕스럽고 세금을 빼먹었다는 식으로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지방정부의 탐욕이 아니라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만든 행정적·정치적 거버넌스다. 이번에 중앙정부가 나서 문제를 해결해도 앞으로 이런 일은 또 발생할 것이다. 잼버리 같은 일이 또 일어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조를 철저히 점검하는 게 중요하다.
-<김은경, 시부모 18년 모셨다? 아들·시누이 ‘막장 폭로전’>(8월 8일 자 A6면)은 김은경 민주당 혁신위원장의 가족 간 갈등을 거의 한 면을 할애해 다루었는데, 이게 적정한가라는 의문이 든다. 김 위원장은 노인 폄훼 발언으로 사회적 논쟁 대상이 된 인물이지만, 혁신위 활동과는 관련 없는 사적인 가정 문제를 ‘시부모 18년 모셨나’ ‘재산 빼돌렸나’ ‘부부 불화가 자살 원인?’ 등으로 시시콜콜하게 다룬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가족의 사생활인데 옐로페이퍼 같은 기사로 조선일보 격(格)이 떨어지고 민망해 보였다.
[오염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된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과학 대 괴담’ 구도를 통해 과학을 ‘동원’하는 인상을 준다. 어떤 과학자가 오염수 방류가 괜찮다고 말하면 훌륭한 과학자이고, 문제가 좀 있다고 얘기하면 돌팔이 과학자가 되는 식이다. 하지만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의 본질은 ‘과학 대 비(非)과학’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자연재해에서 촉발된 사고이고, 전 인류가 공동체 차원에서 방사능이란 리스크를 나누어 부담할 의사가 있느냐 합의하는 게 본질이다. 이 문제는 다른 나라들과 발맞춰 대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해야 한다.
-<결혼 두 달 된 교사, 여행 가려던 20대, 삼남매 둔 치과 의사…>(7월 17일 자 A3면)는 청주 오송 지하 차도 침수 사고로 희생된 사망·실종자들의 사연이다. 이런 재난 보도를 보면, 문제 원인을 찾기보다 ‘욕 받이’나 ‘희생양’을 찾고, 피해자들의 개인 서사(敍事)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의인이든 희생양이든 개인 스토리를 강조하다 보면 구조적·근본적 원인보다 표피적 이유나 감정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보도로 흐를 수 있다. <실종자 찾다가… 주검으로 돌아온 스무 살 청춘>(7월 20일 자 A1면)도 같은 맥락이다. 해병대원의 안타까운 사연이 아픈 공감을 더할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군인을 재난 구호에 동원하는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최근 서울 신림역과 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보도와 관련, 지나치게 가해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스토리를 만들어주고 관심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왜 마이크를 들이대며 그들의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사회에 불만이 있고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이 가해자의 말에 동조하고, 심지어 범죄를 저질러 이목이 집중되는 것을 동경하게 돼 모방 범죄의 동력이 될 수 있는 위험성을 지적해야 한다.
[흉기 난동]
-<길 가던 사람들 또 ‘묻지 마 칼’에 찔렸다>(8월 4일 자 A1면) 기사에는 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의 피의자가 흉기를 들고 시민을 공격하는 사진이 크게 실렸다. 이런 민감한 범행 장면은 독자들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다. 이 사진은 피해자 시각보다 가해자 중심으로 보인다. 같은 날 자 A3면에 실린, 피해자를 도와주는 시민 사진을 1면에 실었더라면 균형 있는 피해자 중심 보도가 되었을 것이다.
-<文 정부 비리 폭로한 김태우, 광복절 특별사면>(8월 10일 자 A1면)에서 “김태우 전 구청장은 (중략) ‘블랙리스트 의혹’ 등을 폭로했다가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기소”됐다고 썼다. 그런데 김 전 구청장의 기소 내용에 ‘블랙리스트 의혹’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기사는 ‘김 전 구청장은 문재인 정부의 비리를 폭로한 의인이고, 그 결과 유죄 판결을 받고 어려움을 겪다가 특별사면이 이루어졌다’고 읽어주기 바라는 것 같다. 그래도 팩트는 바로 써야 한다. 김 전 구청장이 블랙리스트 의혹이나 감찰 무마 의혹 등을 폭로한 것은 맞지만, 그것 때문에 기소된 게 아니라는 점에서 기사 제목과 텍스트가 정확하지 않다.
-지난 한 달 조선일보 1면에 폭염, 폭우 등 자연재해 기사가 실린 날이 절반을 넘었다. 기상 재해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가 겪는 고통이다. 그럼에도 우리 언론 시각은 한반도 안에만 머무르고 있다. 세계적 이슈에 대한 독자들의 무관심이 원인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신문이 이를 다루지 않아 독자들이 무관심한 것은 아닐까. <美 48도, 이집트 45도… 유엔 “온난화 끝나고 지구 열화 시대 왔다”>(7월 29일 자 A3면), <’불바다’ 하와이 최소 55명 사망… 바이든 ‘중대 재난’ 선포>(8월 12일 자 A1면)처럼 지구촌 소식을 전하는 기사를 더 많이 써야 한다.
[교사 통계]
-<6년간 교사 100명 극단 선택 “학부모가 도끼로 목 따겠다 협박도”>(7월 31일 자 A10면)는 학부모 협박 등으로 많은 교사가 심리적 압박을 받아 자살에 이른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 같은데, 통계 자료를 잘못 활용했다. 전체 초·중·고교 교사 44만여 명 가운데 지난 6년간 100명이 자살했다면, 1년 평균 17명꼴로 전체 교사 대비 0.0038%가 된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국민 자살률(0.025%)의 6.5분의 1밖에 안 된다. 또 자살 교사 중 초등학교 교사 비율이 57%로, 전체 교사에서 초등학교 교사가 차지하는 비율(44%)보다 높다고 하면서 초등 교사가 중-고교 교사보다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 묘사했으나, 이를 통계적으로 상관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이상한 결론이 나오는 것은 작은 샘플링만으로 전체 모집단의 특성을 추출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교사와 다른 직업군 간 자살률을 비교하면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대학 총장 인터뷰 기사가 잇따라 실리고 있는데, 대부분의 내용이 입시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안타깝다. 물론 입시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대학 총장이 입시에 대해 갖는 자율권이 크지 못하고,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 언급대로 대학이 집중할 것은 잘 뽑기보다 잘 가르치는 것이라는 점, 최근 AI 약진으로 고등교육 내용과 방식에 혁명적 변화가 예고된다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대학 총장 인터뷰를 입시 위주로 하는 게 과연 옳은지 의문이다.
-<버려지는 급식… 학생 줄었는데 잔반은 늘어>(7월 18일 자 A12면)는 코로나 사태 이후 학생들이 학교 급식을 잘 먹지 않는데, 자극적인 배달 음식에 길들여지고 여학생들의 경우 다이어트가 주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기사에 교사나 교감, 영양사 인터뷰는 있지만 정작 급식을 먹지 않는 학생 인터뷰는 찾아볼 수 없다. 학생들이 원하는 급식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지 않고 성인 중심, 급식 공급자 관점에서 문제를 보는 것이다. 대안 역시 공급자 중심의 잔반 줄이기 캠페인, 잔반 급식소 기부 등에 머물고 있다. 학생들이 학교 급식을 좋아하도록 하는 노력에 대한 촉구나 제안은 찾아볼 수 없다.
-’상온 초전도체’와 관련, 8월 3일 자 <‘상온 초전도체’ 주장에 붕 뜬 세계>(A1면)에 이어 A10면 한 면 전체를 할애해 관련 소식을 다뤘다. 신빙성 없는 주장에 붕 뜬 것은 조선일보도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하지만 과학의 첫째 덕목은 ‘재현성’으로, 해당 분야 전문 과학자에게 검증·재현된 후 전문 학술지에 게재되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바른 길이다. <美 연구소 “초전도체 아니다” 한마디에… 테마주 ‘와장창’>(8월 9일 자 B1면)에서 보듯이 관련 주식이 덩달아 춤추고 결국 바닥으로 직행한 것도 언론이 차분하지 못했던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상온 초전도체 발견 같은 엄청난 과학적 성과 발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저출산]
-<’저출산’ 예산 50조원 넘었는데, 출산·양육 예산 비중은 주는 아이러니>(7월 29일 조선닷컴)는 저출산 대응 예산의 하나인 가족 지원 예산의 GDP 대비 비중이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저출산이 그렇게 심각하다고 얘기하면서, 2016년부터 청년 일자리·주거 지원 등이 저출산 예산 범주에 들어가 출산·양육 지원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순수 저출산 예산 비중은 오히려 줄었다고 한다. <’임금 80% 보전’ 육아휴직 급여, 상한액 적용하니 40%로 ‘뚝’>(7월 30일 조선닷컴)은 육아휴직을 쓸 때 명목상 통상 임금의 80%까지 받을 수 있지만, 상한액이 월 150만원에 걸려 있어 실제로는 통상 임금의 40%까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급여가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데 누가 선뜻 육아휴직을 쓰겠는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면서도 실제 이에 역행하는 각종 제도적 결함을 지적해야 한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이승만은 애국자요, 82세에 20년 뒤 보고 원자력 준비시켰으니까”>(7월 12일 자 A28면)를 보고 켈로부대 출신 94세 원자력 아버지 이창건 박사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82세에 시작해 10년 동안 과학도 238명을 국비로 유학 보내고 앞으로 20년 후의 성과를 기대하며 원자력 정책을 추진한 이야기인데, 의미도 있고 감동적이었다.
정리=김정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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