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드러누운’ 중국 부동산
‘중국 사회가 우리로 인해 더 좋아지길 바랍니다.’
1992년 설립된 중국 최대 민간 부동산 업체 ‘비구이위안’의 홈페이지에는 이 같은 슬로건이 적혀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말은 사실이었다. 비구이위안은 지난해 전국적으로 공사 중단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주택 70만채를 공급하며 부동산 시장의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빈곤 구제 사업엔 누적 2조원을 투입했다. 지난 2일엔 포천지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에 올라 중국인들의 자랑이 됐다.
하지만 비구이위안은 지난 7일 만기가 도래한 채권 이자를 갚지 못했고, 3일 뒤엔 “회사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고 공개적으로 시인했다. 시장에선 비구이위안의 이런 행보를 ‘탕핑(躺平·아무것도 안 하고 드러눕기) 선언’으로 받아들였다. 중국 정부의 강도 높은 규제로 부동산 시장이 망가지자 버티다 못한 민간 기업이 ‘정부가 책임지라’며 대자로 드러누웠다는 해석이다. 중국 금융권 관계자는 “비구이위안은 국유기업에 흡수되는 시나리오까지 각오하고 정부에 바통을 넘긴 것”이라고 했다.
중국 부동산 업계는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다. 정부의 극단적 부동산 정책을 일개 민간 기업이 버텨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부동산 시장 침체는 2021년 당국이 대형 부동산 업체를 겨냥해 금융 규제를 대폭 확대하고 투기 억제 정책을 펴면서 시작됐다. 이후 ‘제로 코로나’ 정책이 작년 말까지 계속되며 중국 부동산 시장은 장기 침체에 빠졌다. 중국의 국유 부동산 업체들은 은행으로부터 끝없는 수혈을 받으며 생존했지만, 민간 업체인 비구이위안은 시장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중국 금융권에서는 비구이위안의 국유기업 전환을 예견하고 있다. 회사를 해체한 다음 여러 국유 부동산 업체들이 인수하는 식으로 사태가 수습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5대 부동산 업체 가운데 유일한 민간 업체였던 비구이위안이 ‘오마분시(五馬分屍)’의 결말을 맞이하게 생긴 것이다. 이 과정에서 비구이위안의 1선 도시(베이징·상하이·선전·광저우) 아파트 건설은 지장 없이 진행되겠지만, 중소 도시 아파트들은 란웨이러우(짓다 만 건물)로 전락할 수 있다. 비구이위안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은행 등 금융기관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부실을 떠안게 된다. 국유 부동산 업체들이 완전 장악한 중국의 부동산 시장은 과거보다 훨씬 경직될 수밖에 없다.
중국에선 앞으로 민간 기업이 반(反)시장 정책을 견디지 못해 고꾸라진 다음 국유화 수순을 밟는 일이 더욱 흔해질 것이다. 기업의 경쟁력은 떨어지고 충격파도 크겠지만, 시장 장악이 목표인 중국 지도부는 출혈을 감수할 것이다. 이미 ‘빅테크 때리기’를 통해 알리바바를 손안에 넣었고, ‘사교육 금지’를 통해 교육 산업을 재편하지 않았는가. 한 나라가 성장과 발전이 아니라 통제와 안정을 목표로 삼으면 잘나가는 기업도 희생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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