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도 되나요, 당신의 마음을? 영화 속 ‘그때 그 시절 가요’ 열풍
‘어쩌다 한 번 오는 저 배는/ 무슨 사연 싣고 오길래/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마음마다 설레게 하나’.
지난달 26일 개봉해 460만명을 동원하며 여름 영화 흥행 1위를 기록 중인 영화 ‘밀수’에서 밀수선이 바다를 가를 때 김트리오의 1979년 노래 ‘연안부두’가 나오며 관객들 귀를 사로잡는다. 1970년대 가상의 도시 ‘군천’에서 밀수 범죄에 휘말리는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그 시절 대표 히트곡 노래가 겹쳐진다. 밀수꾼 해녀 진숙(염정아)은 친구인 춘자(김혜수)에 대한 복잡한 속내를 드러낼 때 가수 최헌 노래 ‘앵두’의 “믿어도 되나요 당신의 마음을/ 흘러가는 구름은 아니겠지요” 소절을 흥얼거린다. 월남전 참전 용사이자 밀수 조직 두목인 권상사(조인성)가 등장할 땐 김추자가 부른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가 나온다. 주로 1970년대 인기를 끈 가요 14곡이 쓰였다. 류승완 감독은 간담회에서 이 같은 연출을 위해 “1970년대 음악에 진심인 가수라서 ‘장기하’를 음악감독으로 택했다”고 말했다.
영화 속 1970년대 노래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다. “음악 덕에 1970년대 한복판에 직접 서 있는 것만 같다”는 관객 호평과 함께 밀수의 OST 모음집 유튜브 영상이 공개 일주일 만에 조회 수 10만회를 넘었다. 배급사 뉴(NEW) 측은 극중 옥분(고민시)이 운영하는 다방에서 자주 트는 노래란 설정으로 ‘뉴-종로다방 플레이리스트’를 공개하며 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관객과의 대화(GV) 시간을 따로 마련했다. KBS 음악방송 ‘불후의 명곡’은 ‘밀수 OST’ 특집을 꾸리기도 했다.
지난 9일 개봉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윤수일이 1982년 낸 곡 ‘아파트’를 전면에 세웠다. 아파트에 대한 집착이 강한 주인공 영탁(이병헌)은 평소 ‘539번’이란 노래방 번호까지 외울 만큼 이 노래가 애창곡이다. 그가 직접 이 노래를 부를 때 영화 카메라는 영탁이 어떻게 황궁아파트에 들어와 인간성을 상실하게 됐는지를 회상 장면으로 함께 비춘다. 야구 경기 응원가로 즐겨 쓰일 만큼 흥겨운 댄스풍인 ‘아파트’의 멜로디를 영탁의 내면 속 어둠을 그리는 데 쓴 것이다. 이런 반전 배치가 영화 속 영탁의 모순적인 행동들을 잘 부각시켰다는 관객 호평이 이어졌다.
영화에 옛 노래를 삽입하는 ‘레트로 OST’ 전략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영화, 특히 히어로물 명가인 ‘마블(Marvel)’도 즐겨 쓰는 방식이다. 마블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에서 주인공 피터 퀄이 어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카세트 테이프를 즐겨 듣는다는 설정으로 각종 올드팝을 OST에 끌어왔다. 이를 목록으로 정리해 ‘피터 퀄의 끝내주는 노래 모음집’이란 시리즈 음반으로도 발매했고, 1편 모음집은 2014년 빌보드 메인 음반차트 ‘빌보드200′ 1위까지 올랐다.
김도헌 평론가는 “1970~80년대 한국은 특히 급속한 도시 개발과 정치 난맥상을 거쳤고, 그 과정이 음악에도 격렬하게 영향을 미쳤다”며 “가사에도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가 풍부하게 담겼고, 메가 히트곡도 많아 영화 속 시대상을 그리기에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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