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Z세대를 위한 변명
두달 전 업무용 휴대폰을 바꿨다. 입사 후 회사에서 처음 받았던 휴대폰을 떠나보내려니 싱숭생숭했다. 작별을 고하기 전, 자주 쓰던 메모장 앱을 켜봤다. 취재 메모, 오늘의 할 일, 언젠가 택시 안에서 엉엉 울며 토해내듯 썼던 일기…. 수십 개의 메모들을 ‘흐린 눈’으로 훑던 중 손가락이 한 곳에 멈췄다.
“안녕하세요, 저는 조선일보 김지원 기자입니다...”로 시작하는 장문의 메모. 메모라기보단 대본에 가까웠다. 입사 초반,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 등장한 20대 여성 인턴 기자 캐릭터가 화제였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에 말을 제대로 끝맺지도 못하고, 툭 하면 울먹거리는 모습에 사람들은 웃었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취재원한테 나도 저렇게 보이면 어떡하지’란 생각에 가슴이 철렁했다. 그래서 전화 취재를 하기 전엔 그 대본을 써놓고 너덧 번씩 읽었다.
생각해 보면 그 캐릭터에게선 갓 취업한 또래 친구들의 모습이 얼핏 겹쳐 보였다. 당돌하고 씩씩한 척하지만 미숙하고 불안한 나. 잘해서 인정받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 우리. ‘막돼먹은 Z세대’에 대한 괴담이 퍼지던 때, 우리의 진짜 정서가 그에게 조금이나마 담겨 있다고 느꼈다.
그게 끝이었다. 요즘 Z세대는 ‘직장을 침공한 신종 괴물’로 묘사된다. ‘Z(제트)’라는 단어 자체에 은근한 적대감과 못 미더움이 깃들어있다. 온라인에는 Z세대가 일으킨 직장 만행이 떠돌고, 그중 극단적인 사례들이 TV에 등장한다. 물론 어느 정도는 사실일 것이다. 이어폰을 끼고 상사의 지시를 무시하는 Z, 출근하자마자 뛰쳐나가는 Z가 어딘가에는 있었을 테다. 그러나 그 옆에 서투르지만 열심히 배우는 Z,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져 화장실에서 울음을 삼키는 Z는 없었을까.
세간의 이목이 유별난 몇 사람에 쏠리는 동안, 평범한 Z세대는 ‘요즘 애들’이란 굴레를 벗어던지려 발버둥친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사회생활 잘하는 법’ ‘일 잘하는 사람의 특징’ 영상은 간절한 Z세대의 성지(聖地)가 됐다. “회사에서 민폐가 되는 것 같아 영상을 찾아봤다” “팀에서 잘 적응하고 싶다”는 댓글이 수백 개씩 달린다. 주위를 둘러봐도 스스로를 다그쳐가며 업무와 조직에 적응하려는 이들이 훨씬 많다. 그러나 이들의 분투는 전파를 타고 퍼지는 ‘Z세대 빌런 썰(이야기)’ 앞에 무력해진다.
사회에 첫발을 들인 Z세대는 조직에서 가장 약한 존재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항의하기 어렵고,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잘려나가는 ‘꼬리’다. 그러나 ‘막나가는 Z세대’ ‘나약한 요즘 애들’이란 편견이 단단해질수록 이런 현실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누군가는 그 깊은 간극 사이로 떨어진다.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던 스물셋 초임 교사가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교실 창고에 스스로 들어갈 때까지 그 학교 관리자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는 “숨진 교사가 스스로 1학년을 지망했다”며 고인을 탓했다.
이제는 불편하다. 밑도 끝도 없이 재생산되는 소수의 기행(奇行)이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다수의 Z세대보다 더 큰 힘을 갖는 것이 맞나. 서투르고 불안한 날들을 딛고 성장하려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유머의 탈을 쓴 조롱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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