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202] 이루어질 수 없는…
이웃 형네 놀러 가 눈동냥 하는 처지에 줄을 바꿔 맬 수도 없고. 왼손잡이 초등생 기타 소리가 얼마나 시답잖았을꼬. 그나마 시늉하기 괜찮은 노래가 한 곡 있었다.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차가운 네 눈길에 얼어붙은 내 발자욱/ ….’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 짠하지만, 이루어져서 거북한 일도 많더라.
‘북한 정권에 의한 완벽한 인권 침해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인권 침해만으로도 그런데, 이루어진다는 말 때문에 더 안타깝다. ‘이루다’가 뭔가. 뜻대로 되게 한다는 뜻이요, 어떤 상태나 결과를 나타낸다는 말이다. 꿈·소원·목적, 시합·거래·토론처럼 대개 긍정적이거나 서로 하고자 하는 일에 써야 어울린다. ‘인권 침해가 이루어진다’ 함은 아니 될 말. ‘인권 침해가 벌어지고’나 ‘(인권 침해를) 저지른다’ 해야 옳다.
‘검사를 받으려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여럿이 법석거리는 상황이 북새통인데, 누가 그러기를 뜻하거나 바라나. 역시 ‘북새통이 벌어지던/나던’이 어울린다. 수면제를 피로 해소제라 속여 먹이고 몹쓸 짓을 했다는 기사 표제가 이랬다. ‘성폭행, 졸피뎀 건네고 이뤄졌다.’ ‘저질렀다’ 해야 마땅한데, 참 못된 제목 아닌가.
‘조직적 투기 행위가 이뤄진 만큼’이나 ‘유력 인사들의 청탁으로 비리가 이뤄졌다’도 마찬가지. 투기나 비리처럼 안 좋은 일에 ‘이루어지다’를 써서야. ‘투기 행위가 일어난’ ‘비리가 벌어진’ 하면 거북함은 면하겠다.
아예 이뤄질 필요가 없는 일은 또 얼마나 흔한가. 바로 위 두 보기를 ‘투기를 벌인’ ‘비리가 생긴’ 하면 훨씬 낫겠다. ‘관리 감독이 허술하게 이뤄져 일이 커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리가 허술해’ 하면 그만. ‘유럽은 활발한 전기차 개발이 이뤄지는 지역’도 ‘전기차 개발이 활발한 지역’과 비교해 보자.
어린 시절이야 조를 형편도 아니었으니 그렇다 치고. 밥벌이하는 어른 돼서도 기타 하나 장만하지 못했다. 게으르고 못난 탓일까, 아니면 정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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