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성숙한 책임사회를 위해
문제의 본질 뒷전화 심각, 부모 같은 정부·기업 돼야
이동현 평택대 총장
우리 사회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만 하면 그 책임을 둘러싸고 네 탓 남 탓 논쟁으로 시끄럽다. 정치권에서는 ‘현 정권 vs 전 정권’ 논란이 하루도 빠짐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의료계 노동계 교육계 등 모든 분야에서 책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의 부실 준비에 대한 책임 공방이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와 전라북도의 책임론을 내세우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했고, 대회 집행위원장이자 주관기관장이 전북도지사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잼버리 파행이 정부가 폭염 사전대비 등 준비에 미흡했다면서 현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현 정부가 자신들의 잘못을 전 정권과 전북도에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잼버리 사태는 CNN BBC 등 외신 보도까지 나오면서 국가이미지 실추 논란으로 확대된 데다 2030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까지 있다.
네 탓 남 탓 논쟁의 책임 공방전은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에서도 숱하게 목격된 바 있어 이제는 한국 사회의 익숙한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 시기 때에도 의료계와 정치권의 공방이 있었고,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은 교사-학부모-교육부-장애인부모 등 다수의 주체가 등장하는 공방전으로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들이 농림축산식품부를 향해 정부의 AI 방역 실패를 애꿎은 고양이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며 규탄대회도 열었다.
책임에 대한 논의에는 개인적 수준에 초점을 맞추는 미시적 접근과 사회적 수준에 초점을 맞추는 거시적 접근이 있을 수 있다. 미시적 수준으로 보면 개인의 책임을 강조한다. 자신의 일은 자신이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를 예를 들면 ‘이태원에 가지 말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성추행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논리도 같은 맥락이다. 사회구조적 접근은 사고의 원인을 사회적 구조와 제도에 돌리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과 책임을 사회구조적인 것으로 보고,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금까지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원인이 있음에도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방법으로 쉽게 책임을 회피한 사례가 숱하게 있어 왔다. 그러나 모든 사건의 원인과 책임을 한쪽에만 돌리는 행태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병리현상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 ‘책임회피’와 ‘책임전가’로는 우리 사회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책임을 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아일랜드의 사회학자 스트리돔은 근대성을 규정하는 담론에 대해 ‘권리’에서 시작하여 ‘정의’를 거쳐 이제는 ‘책임’ 담론으로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근대 초기에는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는 담론이 지배적이었고, 산업혁명 이후 빈곤의 문제가 심각해지자 복지국가를 위한 정의담론이 등장했다. 현대사회 들어 환경 안전 거버넌스 등의 문제가 등장하면서 책임 담론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책임의 시대를 선포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윤리적 반성을 촉구하고 있는 명저 ‘책임의 원칙’을 저술한 독일의 철학자 한스 요나스의 주장이 주목된다. 요나스는 책임의 원칙을 미래지향적 윤리로 내세우면서 정치가의 책임을 ‘총체성’ ‘연속성’ ‘미래지향성’으로 정의하고 있다. 정치가 책임이 부모의 책임과 같다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까지 책임의 범위가 확대된다. 모든 자연과 생명을 보존하고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떤 결과를 야기했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특히 현재 세대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우리는 최근 사고가 일어나면, 말단에 책임을 돌려 일선 책임자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책임자가 성숙하게 책임지는 모습은 결코 아니다. 아니면, 최상층 책임자를 향한 정치적 공격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사고의 진정한 원인과 책임을 찾기보다는 정치적 공방과 세속적 관심이 우선시되면서 문제의 본질이 뒷전으로 밀리는 부작용을 경험하게 된다. 사고 이후 책임 논란과 정치적 공방을 거치면서 나온 결과는 법 개정과 제도 개선, 일부 책임자 징계 등으로 귀결된다. 이렇게 나온 결과물이 우리 사회에서 비극과 참사를 억제하고 최소화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인정되는 사례도 많다. 그러나 이 정도의 대책으로 우리 사회가 안전사회로 변모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책임의 주체, 대상, 시간적 범위, 공간적 범위를 완전히 새롭게 정의한 요나스의 주장대로 성숙한 책임사회로 나아가야 할 때다. 부모 같은 정부 기업 개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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