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친구에게 추천하는 두 권의 책
1.이 나이에도 나를 늘 꼬마친구라고 불러주는 사랑하는 벗 현숙아, 캐나다의 여름은 여기만큼 덥진 않을 테지?
지금도 우리가 함께 다니던 창경초등학교 근방을 지날 때면 꼭 네 얼굴이 떠오르곤 한단다. 너의 꾸밈 없는 밝은 웃음과 솔직함, 귀여운 보조개를 나는 늘 부러워하였지. 1997년에 초판이 나온 ‘사랑할 땐 별이 되고’라는 나의 산문집에 ‘튤립꽃 같은 친구’로 등장했던 너는 이제 나와 함께 구체적인 노년을 살고 있으니 왠지 좀 초조한 마음도 생기지 않니? 그래서 너는 내게 종종 슬픈 푸념도 하고 ‘천국 가는 비법’을 알려달라고 떼를 쓸 때면 저절로 웃음이 나곤 한단다.
‘가물가물한 지나간 날들은 강물과 함께 흘려보내고 가슴에 찍어놓은 꿈은 저버리지 말자. 예수님의 아름다운 신부로 남아 있자. 허망한 세월이 속삭이는 바람의 노래는 스쳐 보내고 하얀 안개꽃으로 단장한 신부의 모습으로 그날을 기다려 보자. 너와 나 시간 앞에 서러워하진 말자. 그리운 님이 약속한 그날이 오고 있으니! 꼬마친구야. 가을에 한국 가면 꼭 만나야 할 것 같아. 사진 속에 보이는 네가 어떤 꽃들보다 아름답네….’
며칠 전에 받은 너의 정겨운 문자를 다시 읽어본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다고 게시까지 하고 나서 방에 들어오면 찾던 물건이 거기에 있고 늘 기억하던 사람과 사물들의 이름이 빨리 생각나질 않아 당황스럽고 과거와 현재의 기억에 혼돈이 오고 이게 다 노년기의 상태를 말해주는 거지만 슬퍼하기보단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오히려 유머러스하게 웃으면서 넘어가야 하겠지? 늘 책을 좋아하는 문학소녀인 너에게 오늘은 내가 최근에 추천의 글을 쓰기도 한 두 권의 책을 소개하고 싶네. 예쁜 손수건에 미리 포장도 해 두었단다.
2. 토모스 로버츠의 ‘세상이 너를 기다라고 있어’.
런던에 살고 있는 시인이며 영화제작자이기도 한 토모스 로버츠의 그림동화책 ‘세상이 너를 너를 기다리고 있어’를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었는데 이 책은 나의 게으름을 일으켜 세우는 귀중한 메시지를 담고있어. 자주 미루기 쉬운 청소, 설거지, 편지 쓰기를 제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힘이 있더라구.
책 속의 주인공이 침대에서 일어나길 싫어하고 꾸물대는 꼬마에게 어서 일어나라고 하니까 꼬마는 ‘내가 온종일 잠만 자도 세상은 절대 모를 거니 제발 내버려 두라고’ 하지.
그러자 책 속 주인공이 ‘네가 침대에서 일어난 그 순간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졌다고!’말하는 대목이 나는 특히 좋았어.
-우리 마음 속에는 더하기와 빼기가 있어. 더하기와 빼기는 힘겨루기를 하고 있단다.
-세상에 아름다움을 얼마나 더하거나 뺄지는 우리가 정하지.우리는 매일 아름다움을 더하거나 빼. 우리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으로 말이야. 이를테면 진심 어린 말로 아름다움을 더하고 별 생각 없는 거짓말로 아름다움을 빼는거야…전 세계에 있는 아름다움의 양은 잘 늘어나고 잘 줄어들어. 거기에는 우리 모두 책임이 있지. 많은 사람들이 더하기를 하면 전 세계에 있는 아름다움의 양은 늘어 나. 하지만 우리 안에 숨은 빼기가 언제든지 평화를 깨뜨릴 준비를 하고있지.
-사람들이 가장 힘들었던 때는 아름다움의 양이 너무나도 많이 줄어들었을 때야. 너처럼 멋진 아이가 시간을 소중하게 쓰지 않으면 전 세계에 있는 아름다움의 양도 줄어들어. 네가 눈앞의 일에 최선을 다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니? 찡그린 얼굴 가운데 피어난 미소 하나가 모든 걸 바꿀 수 있단다.더하기의 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누구나 느낄 수 있단다…좋은 말과 좋은 행동을 하나씩 할 때마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점점 늘어나. 살다 보면 때때로 지칠 때도 있겠지만 너는 네 안에 숨은 힘을 발견하고 말 거야. 그러니까 이제 일어나서 나와 함께 우리가 할 수 있는 더하기를 해 보자. 어떻게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오늘부터 계획을 세워보는거야. (본문 중)
책을 다 읽고 나면 나도 어서 내 안의 숨은 힘을 발견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늘리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된단다.
3. 로랑스 드빌레르의 ‘모든 삶은 흐른다’.
‘삶의 지표가 필요한 당신에게 바다가 건네는 말’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프랑스의 어느 철학과 교수가 쓴 책인데 섬 닻 빙하 항해 등대 무인도 방파제 바다소금 밀물과 썰물 등등 바다에 대한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공부할 수도 있고 우리네 삶과 연결 지어 이야기하는 것들이 저자의 철학적 관점과 더불어 흥미롭게 다가오더라구.
‘바다는 우리에게 삶을 빛내는 예술을 가르친다’ ‘삶이란 바다처럼 다양한 색을 띤다’는 저자의 생각이 바다와 연결된 여러 상징들을 통해서 아름다운 표현으로 펼쳐지는 책! 인생과 바다에 대해서 어쩌면 이렇게까지 깊고 넓은 통찰을 할 수 있을까? 내내 감탄하면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도 어느새 인생철학자가 되어 또 하나의 섬이 되고 바다가 되는 기쁨을 체험하게 되는 것 같아. 자연과 사물, 자기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하는 법을 구체적으로 배우면서 말이야. 이 책엔 필사하고 싶은 구절들이 많지만 몇 개의 문장만 뽑아서 적어 줄게.
-바다는 인생이다.파도처럼 넘실거리고 소용돌이치며 밀물과 썰물처럼 오르락 내리락 하지만 곧 잔잔하게 빛을 담아 환하게 빛나는 것,우리의 삶도 그렇게 소란하게 흐른다.
-인생은 멀리 떠나는 항해와 같다.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이라는 항해를 제대로 하려면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바다는 우리에게 자유를 미루지 말라고 말한다.인생을 제대로 산다는 건 쓸데없는 걱정으로 나 자신을 가두지 않는 것이다.
-바다는 계속해서 방문자를 기다리는 심연의 박물관이다.
사랑하는 친구야! 네가 가을에 여기 오면 꼭 한 번 바다에 나가 바다를 닮은 인생을 이야기하자. 반갑게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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