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생각과 인격, 마음의 근육을 키우라
묻지마 범죄와 길거리의 악마들이 기승을 부리면서 어린 학생들까지 선전포고하듯 생각 없이 범죄 예고에 동참하고 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에서 히틀러의 부하로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일을 매우 근면하고 효율적으로 해냈던 아이히만을 통해 평범한 인간이 커다란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악의 평범성’을 지적한다. 아렌트는 이 원인을 ‘생각 없음’이라고 단언하면서 아이히만의 죄가 ‘사유하지 않음’에 있다고 봤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에 대해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과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고 말한다.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범죄 문제의 해법은 어디에 있을까? “사형제를 부활하라”, “호신용 무기를 갖춰 각자도생하라” 등의 제도적·물리적 방법으로는 비판적 성찰의 부재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범죄를 막을 수 없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교육에 관심을 두고 구체적으로 학교와 가정을 생각해 보자.
먼저 학교다. 오랫동안 학교에서 유지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고상한 표현은 “제발 그림자만 밟히면 다행이다”는 고충 어린 토로가 돼 버렸다. 이 문제를 선생님의 교권과 학생의 인권으로 분리하는 프레임은 옳은 대안이 될 수 없으며 소모적인 논쟁이다. 학교에서 깊이 생각하고, 탐구하며, 분별하도록 가르쳐야 하는 교육을 해야 함에도 저학년은 단순한 보육에서 끝나고, 고학년이 되면 입시 경쟁과 서열화에 숨이 막혀 간다. 좋은 학교를 분류하고, 한 두 문제로 학생을 등급으로 나누며,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책임을 회피하는 학교 체제에서 학생들이 터득하는 것은 사유와 인격의 함양보다 거짓과 교만, 그리고 자기 기만이다. 학교는 교사, 학생, 배우는 것들이 유대감의 그물에 촘촘히 연결돼야 한다. 개방성과 환대와 배려를 통해 형성된 유대감의 그물에서 학생들은 자유로운 생각과 표현, 인격과 사람다움을 함양할 수 있다.
다음으로 가정이다.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분석한 뉴스에서 이들의 가정환경과 교육의 정도를 언급한다. 어떤 이는 열악한 가정환경에서 폭력과 학대에 노출됐고, 어떤 이는 우수한 가정환경에서 비교와 억압에 시달렸다. 대한민국의 부모들이 가진 문제는 자녀에 대한 책임의 시한이다. 과연 자녀를 언제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좋은 직장, 결혼, 재산의 증여가 자녀의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다. 인생에서 적어도 열 번 이상은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며 고난의 광야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수많은 어려움, 실패와 좌절의 광야를 겪으면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키워 주는 것이다. 그래야만 미지의 세계를 향한 비전과 도전의 행보가 가능하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삶이냐’에서 “그대가 가진 것을 버리고 모든 속박으로부터 그대 자신을 해방하라. 그리고 존재하라”고 역설하면서 구약성서의 인물들을 예로 든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세기 12:1)는 명령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지면서 유대 부족의 역사가 시작된다. 아브라함을 필두로 그의 자손인 이삭, 야곱, 요셉도 고향과 씨족, 그리고 가진 것을 버리고 미지의 세계로 가는 길을 떠났으며, 하나님을 만나 변화되고 튼실한 마음의 근육을 키워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새로운 일들을 창출하는 모습을 창세기에서 볼 수 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창세기 49장 22절) 야곱이 요셉에게 한 축복이다. 학교와 가정에서 교사와 부모의 교육을 통해 사려 깊은 인격적 존재로 성장하고, 마음의 근육이 단단한 잘 자란 나무가 돼 밖으로 무성한 가지를 뻗어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교육의 해법이야말로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사회적 문제를 예방하고 인재를 키워낼 수 있는 첩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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