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부터 산업재해까지… 캔버스에 담은 사회 모순

김민 기자 2023. 8. 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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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나 정치와 사회의 모순은 항상 있습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 모순들의 단편입니다. 여기에 공감하는 사람도, 부정적으로 볼 사람도 있겠지요. 저는 그저 보고 마주치는 문제를 마음에 담았다 표현할 뿐입니다."

노 작가는 '인류의 고민'에 대해 "처음에는 고은 시인과 연극 연출가 이윤택 등 문제가 된 인물들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지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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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희 초대전 ‘거기 계셨군요’
老작가 눈으로 본 정치-사회 현상
천 그림-삽화 등 95점 한자리에
“그저 마주치는 문제 표현한 것”
노원희 작가의 신작 ‘아침운동 2023’(왼쪽 사진). 작가는 1999년에도 ‘아침운동’을 그렸는데 당시는 웰빙 열풍이 일면서 건강한 몸을 가꾸는 데 열심인 세태를 다뤘다. 아르코미술관 제공
“어느 시대나 정치와 사회의 모순은 항상 있습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 모순들의 단편입니다. 여기에 공감하는 사람도, 부정적으로 볼 사람도 있겠지요. 저는 그저 보고 마주치는 문제를 마음에 담았다 표현할 뿐입니다.”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10일 열린 개인전 기자간담회에서 노원희 작가(76·사진)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8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이기도 한 노 작가는 아르코미술관이 중진·원로 작가의 신작 및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작업 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기획초대전 ‘노원희: 거기 계셨군요’의 주인공이 됐다.

전시는 1980년대 회화부터 신작, 대형 천 그림, 참여형 공동작업, 신문 연재소설 삽화 등 작품 95점과 기록 자료 39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1980년 소집단 미술운동 ‘현실과 발언’의 창립 멤버로 정치적 억압이 일상을 짓누르던 그 시절 회화부터 환경과 노동 문제를 비롯해 특히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저항을 담은 최근작까지 골고루 만날 수 있다.

● 거기 ‘안’ 계셨군요

전시 제목 ‘거기 계셨군요’는 2010년 노 작가의 메모에서 따왔다. 이 대사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라스트 왈츠’(1978년) 마지막 장면에 나온다. 영화의 주인공인 그룹 ‘더 밴드’가 마지막 연주를 마치고 공연이 끝났는데도 그대로 앉아 있는 관객들을 보며 “거기 계셨군요”라고 한 뒤 연주를 다시 이어가는 장면이다. 노 작가는 이 장면을 보고 이렇게 생각한다.

“‘현실과 발언’이 해체된 지 20년. 회원이었던 우리 모두 함께 무대 위에 섰다고 가정해 보자. 커튼을 젖혀 보니…. 사람들이 없다. ‘아, 거기 안 계시는군요’.”

젊은 시절 저항 의식을 불태웠던 작가가 시간이 흐르며 복잡해진 현실 앞에서 느낀 무기력함이 전해지는 대목이다. 전시 기획자는 그럼에도 꾸준히, 현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작업을 이어간 그를 응원하려는 듯 전시 제목을 ‘거기 계셨군요’로 정했다. 그리고 1980년대 대표작 ‘한길’(1980년), ‘거리에서’(1980년), ‘나무’(1982년) 등을 관객 앞에 다시 소개한다. 제1전시실은 이렇게 작가가 세월호 사건, 국정농단 사건, 산업재해 등 한국 사회의 변화를 감지하고 그려낸 작품으로 구성됐다.

● 여자들은 무기를 들고

제2전시실은 작가가 여성으로서 특별히 관심을 가진 젠더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후 고엽제 피해를 입은 남성이 가정폭력의 가해자가 된 사연을 텔레비전에서 접하고 이를 회화로 그리거나, 여성의 가사노동이 폄하되는 현실에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2018년 작품인 ‘인류의 고민’과 ‘무기를 들고’는 당시 한국 사회에 일었던 미투운동을 그대로 담고 있다. 노 작가는 ‘인류의 고민’에 대해 “처음에는 고은 시인과 연극 연출가 이윤택 등 문제가 된 인물들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지웠다”고 했다. 작품에는 머리가 없이 성기만 거대한 인체가 가운데 놓여 있고, 그 옆으로 작은 인물들의 실루엣이 그려져 있다.

20여 년이 지나 미세먼지로 가득한 오늘날의 생활환경을 반영한 새 작품이 탄생했다. ‘인류의 고민’(2018년)은 미투운동이 불붙었던 당시를 그린 작품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들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가 지웠다. 아르코미술관 제공
‘무기를 들고’는 1970년대 미국 여성운동 캠페인에서 영감을 얻었다. 노해나 큐레이터는 프라이팬 등 살림살이를 무기처럼 들고 항의하는 작품 속 인물들에 대해 “한국의 미투운동을 지지하는 여성들의 강한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11월 19일까지.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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