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항아리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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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막둥이가 좋아하는 '항아리 밖으로'(Out of a jar)라는 동화책이 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창피한 일을 당한 그는 당혹감도 항아리에 가둬 창고에 쑤셔넣으려 하지만 이미 창고를 가득 채운 항아리가 서로 부대끼다 모두 깨지고 만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내 임기 중에만 일이 안 터지면 된다"며 마이웨이를 가는 이들에게는 결국 마이동풍이겠지만 이번 새만금 잼버리 행사의 파행도 항아리 맥락에서 보면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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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막둥이가 좋아하는 '항아리 밖으로'(Out of a jar)라는 동화책이 있다. 주인공 토끼 소년은 공포만화나 이야기를 읽고 듣는 것은 좋아하지만 실제로 두려운 일을 겪는 건 싫어한다. 궁리 끝에 그는 두려움을 항아리에 가두기로 한다. 부끄러움과 실망스러움 등 거추장스러운 감정도 차례로 가두다 보니 어느새 희로애락 모두가 항아리행이다. 소년은 무덤덤해진 자신을 발견하지만 뭐가 잘못된 건지 알지 못한다. 어느 날 학교에서 창피한 일을 당한 그는 당혹감도 항아리에 가둬 창고에 쑤셔넣으려 하지만 이미 창고를 가득 채운 항아리가 서로 부대끼다 모두 깨지고 만다. 봇물 터진 자신의 감정에 휩쓸려 바닥에 나뒹굴다 겨우 정신을 차린 소년에게 뜻밖의 일이 생긴다. 맨 처음 가둔 두려움이 맨 마지막에 튀어나오자 그는 행복하면서도 슬프고 신이 나면서도 걱정이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희로애락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용기를 얻은 것이다.
이 동화는 우리 어른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남들에게는 실패를 두려워 말고 용감히 맞서라는 말을 쉽게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조금만 곤란하고 난처한 일을 당해도 회피하기 바쁜 어른들 말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내 임기 중에만 일이 안 터지면 된다"며 마이웨이를 가는 이들에게는 결국 마이동풍이겠지만 이번 새만금 잼버리 행사의 파행도 항아리 맥락에서 보면 이해가 된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 불편한 관계와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관행이 켜켜이 쌓이다 결국 항아리가 깨졌다. 관련 공무원들은 정말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을까. 노동개혁, 교육개혁, 연금개혁, 가계부채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난제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그 폭탄이 자기 앞에서 터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때로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내가 시작한 일이 아니라는 핑계로 앞사람이 쌓아놓은 문제를 수십 년 동안 돌려막다 수습하기 어려울 지경까지 온 것이다.
21세기 최대 화두인 중국 문제도 그렇다. 1992년 수교 이후 왕성한 인적·물적교류로 상호간 이득이 된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사드사태를 전후해 자꾸 항아리 속으로 가고 있다. 6년 만에 한국행 단체관광을 허용하면서도 안중근 의사 전시실과 윤동주 시인 생가를 돌연 폐쇄한 중국 정부의 조치가 양국 관계의 현주소다. 자국 관광객도 모자라 우리나라 위인까지 끌어들인 중국의 행동이 어느 장관의 말마따나 좀스러운 게 맞지만 우리에게도 책임이 없지는 않다. 그간 중국이라는 '방 안의 코끼리'에 맞설 용기와 지혜를 모으기보다 보복이 두려워 '중국 위협론'을 애써 외면했다. 그 용기와 지혜를 모으는 역할을 해야 할 대학사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론화한 서울대 도서관의 시진핑 전시실 문제나 연세대 등 국내 20여 개 대학에 침투한 공자학원 문제가 대표적이다. 일부 개선노력에도 불구하고 근본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대학들은 자기 앞에서 항아리가 깨지지 않기만을 바란다. 과연 우리 사회의 중국 항아리 돌려막기는 언제 어떻게 끝날까.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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