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자율성 만큼 엄격한 내부 평가”···막스플랑크연구회 본부 가보니
39명 수상자 배출한 '노벨상 사관학교'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철칙 본받을만"
지난 16일(현지시간) 찾은 독일 뮌헨의 막스플랑크연구회 본부(Max Planck Gesellschaft) 빌딩 입구에서 만난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 조형물. 생각과 정신을 상징하는 높이 6m 크기의 거대한 미네르바 사이를 지나 건물에 들어서자 곳곳에 16개의 두상(頭像)이 놓여 있었다. 지난 1995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크리스티아네 뉘슬라인폴하르트부터 200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테오도어 헨슈, 2014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스테판 헬 등 모두 막스 플랑크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였다. 크리스티안 하우프트 막스플랑크 국제협력담당관은 “건물 창문으로 뮌헨의 옛 거리가 비치는데, 이는 막스플랑크가 과거를 비춰 인류를 위한 과학을 하겠다는 의미”라며 “최근 노벨상 수상자들은 연구에 집중하느라 흉상 제작을 위한 시간이 부족해 아직 만들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지식은 응용을 앞서야 한다’는 철학 아래 막스플랑크는 지난 1948년부터 75년간 독일 기초과학의 기둥이 되어왔다. 이곳의 연구자들은 빅뱅의 메아리를 듣고 호모 에렉투스의 뇌 구조를 살피는 등 자유롭게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덕분에 막스플랑크는 ‘노벨상 사관학교’라고도 불린다. 막스플랑크 전신인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 때부터 따지면 3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막스플랑크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철칙으로도 유명하다. 막스플랑크는 천문학과 물리, 동물행동, 분자생물학부터 인구통계와 종교까지 다양한 영역을 연구하는 86개의 연구소를 두고 있다. 독일 정부는 한 해 운영 예산으로 지난해 기준 19억 7000유로 (2조 9000억원)을 지원하지만 정부 과제를 강요하거나 인력 운영에 간섭하지 않는다. 각자 원하는 연구를 이어가다보니 서로 다른 연구소에서 같은 주제로 연구를 수행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베르톨드 나이자르트 막스플랑크 연구정책 및 국제협력 부장은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가 싫증나거나 시간이 흘러 다른 연구를 하고 싶다면 연구자 스스로 주제를 바꾸는 것이 허용될 정도로 자율성을 보장한다”고 했다.
연구에 대한 자율성과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내부에서 엄격한 평가 절차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중심에는 각 연구소에서 파견된 800여명의 연구자들로 이뤄진 과학자문위원회(SAB)가 있다. 연구소가 예산 결정을 위해 2년마다 연구 성과 보고서를 자문위에 제출하면 자문위가 연구소를 직접 방문해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막스플랑크 총재에게 보낸다. 연구 성과를 논문이나 특허 수 등으로 평가하기보다 같은 연구자들을 통한 동료 평가를 받는 방식이다. 베르톨드 나이자르트 부장은 “정량적 평가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면서 질적 평가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돼 위험 부담이 큰 장기 연구를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막스플랑크는 기초연구를 통해 얻은 특허를 사업으로 확장시키기도 한다. 기술 이전은 창업지원 기관인 막스플랑크 이노베이션(MPI)에서 전담한다. 연구자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MPI에서 계약 협상부터 특허 교육, 특허권 보호, 분사까지 전 과정을 지원한다. 이로 인해 발생한 수익 중 3분의 1은 연구자에게 지급된다. RNA 간섭 현상을 발견해 세계 최초 RNAi 치료제 개발에 성공한 제약회사 앨나일람도 MPI를 통해 막스플랑크 생화학연구소에서 분사했다. MPI를 통해 지금까지 2950개 이상의 사업화 계약과 184개 이상의 회사가 만들어졌다.
이날 한국 기초과학연구원(IBS)는 막스플랑크와 연구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MPG를 찾았다. 노도영 IBS 원장은 “연구자에게 독립성과 자율성을 부여하고 동료 평가 체계를 도입하는 등 막스플랑크만의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연구자를 신뢰하는 문화가 조성돼 있기 때문”이라며 “막스플랑크 시스템을 한국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연구자의 자율성을 얼마나 보장해야 하는지, 정부 지원을 받고도 독립적일 수 있는 법체계가 갖춰져 있는지 등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뮌헨(독일)=한국과학기자협회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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