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형의 책·읽·기] 행동하는 일본의 양심, 위기의 감각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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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별세한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1935∼2023)는 전쟁 피해국에 대한 책임과 사과를 촉구한 '행동하는 일본의 양심'으로 통했다.
핵무기와 천황제도를 비판했고,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헌법 9조를 수호하기 위한 운동에 참여했다.
동료 린치, 탈주, 불화 등 폭력이 난무하고 자기 파괴의 방향을 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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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만 국내 정식 번역·발간
전쟁 사과 촉구· 김지하 구명도
인류 종말론 속 인간 실존 고민
지진·핵 오염·약자 등 현실 묵시
여성주의 시각에서는 한계점도
지난 3월 별세한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1935∼2023)는 전쟁 피해국에 대한 책임과 사과를 촉구한 ‘행동하는 일본의 양심’으로 통했다. 핵무기와 천황제도를 비판했고,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헌법 9조를 수호하기 위한 운동에 참여했다. 1975년에는 김지하 시인 탄압에 항의하는 단식투쟁을 벌였다.
하지만 작품을 뒤로 한채 그를 ‘실천적 지식인’으로만 평가할 것인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장편소설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가 김현경 가천대 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원의 번역으로 최근 국내에 정식 발간됐다. 1973년 초판 이후 50년만이다.
겐자부로의 소설은 난해하다. 작품에 빗발치는 기괴한 풍경은 마치 예감이라도 한듯, 오늘의 현실을 꿰뚫는 경고이자 생생한 묵시록으로 읽힌다. 뚜렷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위기들이 주변에 만연한 것처럼.
문학평론가 가와무토 사부로의 평을 빌리자면 이렇다. “평균적인 것, 흔해빠진 것, 일상적인 것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건 과잉된 것, 일그러진 것, 이탈한 것이기에, 이 책은 한 편의 정적인 소설의 틀을 넘어, 악몽같은 판타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어딘가 그리운 우화가 된다.”
핵전쟁과 방사능 오염에 대비하기 위해 설계된 핵 셸터(shelter) 안에 지적장애 아들과 은둔하는 한 남자가 있다. 인류 멸망을 예감한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선량한 것”인 고래와 나무를 위한 대리인으로서 여생을 살아가기로 한다. 단조롭고도 평화로웠던 일상은 사회 주변부로 밀려난 청년들인 ‘자유항해단’을 만나면서 깨진다. 대지진으로 인한 시대의 붕괴를 예측하고 모종의 계획을 세우는 단체다. 자유항해단의 새 일원이 된 남자는 사회의 강한 자들에 대한 투쟁을 이어나가고, 정해진 수순처럼 모든 인물은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관동대지진 때 우리의 괴물 같은 아버지들, 할아버지들은 조선인을 희생 제물로 바쳤었지? 그건 다른 누구보다 조선인이 약했기 때문이야. 이번 대지진이 일어나면 혐오의 대상이 될 약한 인간이란 바로 우리들이야. 우리들이 오늘날의 괴물 같은 아버지들과 할아버지들에 의해 희생 제물이 되는 거라고.”
올해 사건 발발 100년이 되는 관동대지진을 암시한 문장도 나온다. 존재하는 모든 위협에 대한 과잉 감각이다. 이미 지나쳐 왔거나 다가오는 것이다. 동료 린치, 탈주, 불화 등 폭력이 난무하고 자기 파괴의 방향을 향해 간다. 작가는 다른 방식으로 재난 트라우마의 탈출을 모색했던 것은 아닐까. 생생한 감각은 신화적 은유의 표현으로 자리잡는다. 작중 ‘오그라드는 남자’라는 인물 설정에서는 핵폭발도 연상된다. 다만 자유항해단의 유일한 여성 일원 ‘이타코’를 성적 치유자로 고착화 시킨 모습은 여성주의적 시각에서의 한계점을 드러낸다.
1973년 당시 작가의 총결산과 같은 책으로 겐자부로와 문학평론가 와타나베 히로시의 대담도 실렸다. 작가는 구약성서 중 ‘요나’서를 떠올리고 이 작품을 썼다고 밝혔다. 큰 물고기에게 삼켜진 인간이 기도를 통해 결국 구원받는다는 내용이다. 정신에 관한 위기를 직감했던 작가는 “세계의 종말 그 자체인 것 같은 큰 홍수가 우리의 가슴께까지 다가와있다”고 말한다.
‘홍수’라는 재난의 상징은 노아의 방주와 함께 1945년 8월 히로시마의 여름을 떠올리게 한다.
작품 소재는 핵오염, 청년, 소수자, 이데올로기, 사회적 약자 등 현대와 당면한 문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인간 실존을 위협하는 것들에 대한 실체를 묻고, 연대와 공존을 위해 공명한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다 잘되었다! 모든 인간에게 마침내 찾아올 것이, 그를 찾아왔다.”
김진형 formati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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