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재의 돌발史전] 인터넷의 함정

유석재 기자 2023. 8. 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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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부터 학교 현장에서 교사가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의 휴대폰을 압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교육부가 발표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지금까지는 어떤 경우에도 학생은 수업 중 휴대폰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이고, 언제 어디에서든 인터넷 접속이 가능했다는 얘깁니다. 수업을 방해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되겠지요.

오래 전 얘기를 꺼내야겠습니다. 1990년대 초중반 제가 PC통신에 입문했던 때였습니다. ‘01410′과 “띠~디 디리디리디’라는 신호음으로 상징되던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세계였습니다. 밤이란 더 이상 혼자 뜬눈으로 지새우는 고립무원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어디에든 저와 비슷하게 덧없이 흐르는 광음을 아쉬워하며 모니터 앞에 모인 불면의 동지들이 있었습니다. 그 은밀한 소통(疏通)의 짜릿함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그 어떠한 종류의 검열도 거치지 않은 자신만의 의견을 게시판에 써 올릴 수 있었습니다.

딛는 발걸음마다 경탄과 흥분의 연속이었습니다. 아, 너도,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는 이렇게도 많았구나. 그러나 그 일락(逸樂)의 시간들은,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리 길게 가지 못했습니다. 자판을 두드릴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언제든지 무슨 의견이든지 밝힐 수 있다’는 전대미문의 시스템이야말로 브론토사우르스 크기의 데마고그와 직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실명(實名)?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실명을 밝힌다 한들 그 수많은 유저 중에서 저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를 인지하는 데에, 이름과 아이디는 별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차명 아이디는 왜 또 그렇게도 많았던지요. 저명한 작가들이 뼈를 깎는 고뇌와 사색을 거쳐 모란을 피우듯이 완성시킨 한 편의 에세이와, 초등학생이 쓴 “님아 ㅎㅎㅎ(뇽무)”와 같은 류의 글들이 1대 1 동격(同格)이었습니다. 비방, 욕설, 터무니없는 모략, 근거없는 횡설수설, 한글맞춤법의 교사형(絞死刑), 집단 패싸움… 얼굴을 맞대고는 차마 저지르기 힘들었을 온갖 비행과 추문들이 그 속에 난무했습니다.

곧 각 게시판 시삽(SYStem OPerator)들의 역할이 주목받기 시작했죠. “게시판에 어울리지 않는 글들은 삭제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욕설과 비방이 섞인 ‘지나친 글’들을 통제하도록 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러자 역효과가 났습니다. 그들의 ‘권력’이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진 것이었죠. 한때 각 게시판에서 그 권력은 무소불위(無所不爲)에 가까운 경우도 많았습니다. 게시판에 한 줄로 머리말을 달지 않아도 삭제, 형식을 갖춰 글을 쓰지 않아도 삭제,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려도 삭제…

당시 급진적 ‘문화논객’의 이름을 내건 이들은 이런 급진적인 비판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PC통신은 거대한 권력의 축소판이다. 그리고 풀뿌리 여론의 자유로운 의견교환과 흐름을 막는 ‘권력의 미시적 하수인’ 역할을 하는 자들은 각 게시판의 시삽 나부랭이들이다.” 미셸 푸코의 영향이 상당히 드러나기도 합니다만, 격하고 지나친 말투 속에 일말의 진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할 순 없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인터넷 세상’이 왔습니다.

20여년 전 조선일보 입사 무렵에 한 동기 기자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인터넷은 양날을 가진 칼과 같다. 현자(賢者)가 쓸 때는 진솔한 땀냄새가 배어나는 민중의 언로(言路), 우인(愚人)이 쓸 때는 헤어나지 못할 오물더미로 가득찬 수천 길 함정.”

당시는 인터넷 뉴스가 본격화되던 초기였습니다. 언론의 역할 중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가 피드백(feedback)이라면, 그 피드백을 거의 무제한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매체야말로 바로 인터넷입니다. 쌍방향성, 다양성, 즉자성(卽自性), 그리고 대중성. 기자의 입장에서 글을 써서 올리기만 하면, 독자의 반응이 곧바로 나에게로 온다! 인터넷 이용자의 관심과 수준은 이제 그 어떤 전문가 집단도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도달했던 것입니다. 공들여 쓴 기사 한 편이 때론 비속에 섞인 댓글로 일거에 폄훼되는가 하면, 그 댓글 속에 뜻밖에도 촌철살인의 진리가 깃들어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들뢰즈 식으로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객관적인 선은 없고 다만 주관적인 가치들이 있을 뿐이다. 좀더 엄격하게 말하자면 오직 가치들, 즉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또다시 세월은 흘렀습니다. 이제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는 스마트폰을 통해, 굳이 실명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은 손쉽게 댓글과 악플을 쏟아붓습니다. 기기(器機)가 달라지니 글을 쓴다는 것도, 그리고 그 기기로 읽는 글 자체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논어(論語)’위정(爲政)편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서예가 김병기가 쓴 '군자불기(君子不器)'.

“군자(君子)는 그릇이 아니다.(子曰: 君子不器)” 주자(朱子) 주(註)에선 그릇[器]에 대해 “각각 그 용도에만 적합해 서로 통용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것은 유가(儒家)가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제너럴리스트를 선호했다는 근거로 해석돼, 막스 베버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비판의 근거로 삼은 문장입니다.

그런데 저는, 참으로 엉뚱하게도, 가끔 공자의 이 말이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콘텐츠다!” 인터넷의 짧은 역사는 우리에게, 적어도 웹 상에선 그레셤의 법칙이 항상 통용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결국 브로델 식의 ‘장기지속’을 이루는 것은 언제나 양질의 콘텐츠이며, 기(器)보다 훨씬 본질적이고 중요하고 근저에 있는 것이 상존하리라는 생각만큼은 끝내 버릴 수 없습니다. 모든 글이란 흔적을 남기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흔적은 콘텐츠를 안고 있습니다.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 줄기 역사의 단면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아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매주 금요일 새벽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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