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자손” “만국의 중심”… 日 ‘자존망대’의 역사[박훈 한국인이 본 일본사]

박훈 서울대 역사학부 교수 2023. 8. 17.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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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 서울대 역사학부 교수
《19세기 후반 서양세력이 동아시아를 압박했을 때 중국은 화이사상을 고수하며 오만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반면 위기감을 느낀 일본은 중국의 ‘자존망대(自尊妄大·함부로 잘난 체함)’를 비웃으며 민첩하게 대응했다. 중국의 ‘자존망대’야 모두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일본이라고 그렇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오늘은 일본인의 자기 인식과 대외관에 대해서 살펴보자.》


日, 스스로 神國으로 여겨

1904년 러일전쟁을 앞두고 러시아를 큰 사람, 일본을 작은 개로 묘사한 풍자화. 일본은 모두의 예상을 깨며 러일전쟁에서 승리했고, 일본 내 ‘자존망대’적 발상은 더욱 힘을 받게 된다. 사진 출처 MIT Visualizing Cultures 홈페이지
고대에 일본이 한반도 국가에 대해 우월의식을 표출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서기’ 9권에는 신라 임금이 일본에 대해 “지금부터 천지와 함께 오랫동안 말먹이꾼으로 따르겠습니다. … 바닷길이 먼 것을 꺼리지 않고 해마다 남자와 여자를 공물로 바치겠습니다”라고 했다고 되어 있다. 역사적 사실로 믿기 어려운 이런 기록들을 바탕으로 한국 경시는 때때로 표출됐으며, 메이지유신 전후 일본 민족주의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더욱 공고해졌다.

중세에도 일본인은 세계가 진단(중국), 천축(인도), 신국(일본)으로 이뤄져 있다며 ‘센터 의식’을 발휘했다. 그야말로 ‘자존망대’다. 근세(도쿠가와 시대)에 들어와서도 조선, 류큐(현 오키나와), 네덜란드 등 에도(江戶·현 도쿄)를 방문한 사절단을 조공사절단이라고 선전했다. 현재의 몇몇 일본 연구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일본형 화이체제’의 형성이라는, 납득하기 힘든 학설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현대판 ‘자존망대’다.

‘자존망대’의 극치는 19세기 들어서 서양 열강의 침입 때 벌어졌다. 일본 중심주의를 주창한 후기미토학자(後期水戶學者) 아이자와 야스시(會澤安)는 “신주(神州)는 태양이 나오는 곳이고 원기(元氣)가 시작하는 곳이며 태양의 자손이 대대로 황위(皇位)를 맡는 것이 영원히 변함없다. 원래부터 대지의 원수(元首)이며 만국의 중심이다”라며 그의 책 ‘신론(新論)’을 시작한다. 일본인이 자국을 신주, 신국(神國), 즉 신의 나라로 여긴 것은 전통이 유구한데, 놀랍게도 2000년 5월 당시 일본 총리 모리 요시로(森喜郞)는 “일본은 참으로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의 나라”라고 발언한 적이 있었다.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 민주시민들의 반발로 사과하기는 했지만 참으로 ‘유구한 전통’이다.

가쓰 가이슈 “조선은 나약한 나라”

아이자와는 세계가 ‘전국시대’에 들어섰다고 봤다. 청나라, 무굴제국, 페르시아, 오스만튀르크, 신성로마제국, 러시아, 그리고 일본이 ‘전국칠웅(戰國七雄)’으로 대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정확한 억측이지만 스스로를 G7으로 인식했다는 게 중요하다. 진단, 천축, 일본의 정립이든, 칠웅의 각축이든 일본은 빠지지 않는다. 이러니 다른 소국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아이자와는 조선과 베트남은 약소국이라 손꼽을 만하지 못하므로 논하지 않는다고 했고, 비교적 조선에 우호적이었던 가쓰 가이슈도 “원래 조선은 나약한 나라로 … 무기를 소홀히 하여 궁술을 중요하게 여기는 정도로, 나머지는 돌팔매질 외에는 없다”는 인식을 보였다(‘개국기원·開國起源’). 얘기가 잠시 새지만 조선인들이 싸우거나 소동을 일으킬 때 돌팔매질을 한다는 기록은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에서와는 달리 1980년대 한국의 학생 데모의 주력 무기는 돌팔매질이었다. 그 역시 ‘유구한 전통’인가.

‘신론’의 저자 아이자와 야스시.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전국시대라면 일본은 어찌해야 할까. 여기서 등장하는 게 ‘웅비론(雄飛論)’이다. 남이 들이닥치기 전에 먼저 쳐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신론’은 필사로 유포되는 과정에서 제목이 ‘웅비론’으로 바뀌기도 했다. 사토 노부히로(佐藤信淵)는 먼저 조선과 만주를 장악한 다음, 이를 발판으로 중국을 공격하는 방책을 제시했다. 그리고 천황이 직접 구마모토에서 발진하여 양쯔강을 타고 올라가 난징을 취하여 이를 임시 황거로 삼자는 것이다(‘혼동비책·混同祕策’). 서양의 외압도 없고 동아시아 국제 정세에 아무런 변동 조짐이 없던 19세기 초의 책에서다. 기이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국내에 있는 아이자와 야스시의 ‘신론’ 필사본. 신론은 일본이 “원래부터 대지의 원수이며 만국의 중심이다”라며 일본 중심주의를 주창한 대표적인 책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세계가 결국 하나의 국가에 의해 통일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아이자와는 “러시아는 세계를 석권하여 이를 모두 신하로 만들지 않고서는 멈추지 않을 것”(‘신론’)이라 했고, 하시모토 사나이(橋本左內)도 지금의 정세로 볼 때 “5대주는 결국 하나가 될 것이며 맹주를 세워야 전쟁이 멈추게 될 것”이라며 그 맹주는 영국이나 러시아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러시아와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무라타 우지히사에게 쓴 편지’). 세계의 최종 승자를 일본으로 생각한 사람도 있다. 홋타 마사요시(堀田正睦)는 일본의 개항을 결정한 막부 로주(老中), 즉 수상이었다. 그는 무역을 통해 국력을 기르고 군사력을 튼튼히 하면 마침내 일본은 세계만방의 대맹주가 될 것이고, 만국이 일본의 지휘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대일본고문서: 막말외국관계문서·大日本古文書: 幕末外國關係文書 18권’).

中 ‘자존망대’에 日도 편승하려 하나

물론 이런 주장들은 1930년대까지는 정책에 반영되지 않았다. 현실주의적 정치가들이 이런 주장을 잘 통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아이자와의 ‘신론’ 같은 책은 1930년대 젊은 장교들에게 필독서였다고 한다. 아마 다른 책들도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책들로 무장했지만 권력에서 소외된 우익 이데올로그들도 군부 인사들에게 이런 사상을 펌프질했다. 당시 군부의 전략가로 대외 침략을 주도한 이시와라 간지(石原莞爾)의 ‘세계최종전론’도 이런 데 영향받았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전 세계가 소련, 미주(美洲), 유럽, 동아시아라는 4개 국가연합으로 나뉘었다며, 4개 연합 사이에 일종의 준결승이 벌어져 소련과 유럽이 탈락하고 일본과 미국이 최종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자존망대’적 발상이 초래한 파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다.

패전 후 일본은 ‘자존망대’를 버리고 평화국가의 길을 잘 걸어왔다. 그런데 21세기 초두인 지금 중국은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버리고 다시금 ‘자존망대’하기 시작했으며, 세계는 다시 ‘전국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에 올라타 일본의 ‘유구한 전통’도 다시 꿈틀대려는 듯하다. 한국과 일본 같은 미들 파워(middle power) 국가가 선택할 길은 아니다. 나의 기우겠지만 그런 조짐이 있다면 부디 자중하길 바란다.

박훈 서울대 역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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