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자전거의 테슬라’도 망했다, 전기 모빌리티 곳곳에 암초

한경진 기자 2023. 8. 17. 21: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WEEKLY BIZ] 애플·테슬라 모방한 전기 자전거 ‘반무프’의 파산
전기 모빌리티에 등 돌리는 소비자들

WEEKLY BIZ 뉴스레터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

그래픽=김의균

‘반무프(VanMoof)’는 고급 전기 자전거를 만드는 네덜란드 기업이다. 대당 판매 가격이 3500유로(약 510만원) 안팎에 이른다. 스마트폰을 통한 주행 제어 기술과 세련된 디자인이 매력 포인트다. 2014년 이후 유럽, 미국, 일본 등에서 20만대를 판매했고, 2억달러(약 2600억원) 가까운 투자금을 유치했다. ‘전기 자전거의 테슬라’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반무프는 지난달 18일 파산했다. 지난 6월 말 온라인 주문 시스템을 예고 없이 닫더니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파산을 선언했다.

반무프의 파산을 두고 테크업계에서는 혁신을 외친 전기 모빌리티 기업이 소비자에게 불편과 손해를 끼치고 사라진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이동 수단의 전기 동력화가 정착되기까지 여전히 암초가 많다는 현실을 일깨워줬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전기 자동차 업계에는 난제가 수북이 쌓여 있고, 전기 비행기나 전기 선박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기자전거 반무프는 테슬라를 벤치마킹해 자전거 모델명도 S·X시리즈로 붙였다. 사진은 플래그십 모델 S5. /반무프

◇애플·테슬라 흉내내다 문 닫았다

반무프는 애플과 테슬라를 벤치마킹했다. 테슬라처럼 반무프도 독자적인 주행 조절 소프트웨어를 적용해 테크 회사를 표방했다. 또한 애플처럼 타사 제품과 부품 연동이 되지 않는 ‘폐쇄형 생태계’를 구축해, 고객 이탈을 막는 록인(lock-in·잠금) 효과를 누리고자 했다. 창업자 타코 칼리어는 “애플의 생산 방식을 그대로 베꼈다”고 했다.

그러나 테크 기업 흉내내기 전략은 막대한 고객 피해를 불렀다. 반무프 자전거는 스마트폰으로 주행 모드를 제어하기 때문에 회사 서버가 멈추면 무용지물에 가깝다. 부품 호환이 안 되기 때문에 수리는 직영 서비스 센터에서만 가능하다. 회사가 문을 닫으면 그 순간 쓸모없는 자전거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위험이 커졌다.

지난달 파산한 네덜란드 전기자전거 브랜드 반무프는 세련된 디자인으로 다양한 패션 브랜드와 협업하며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다. /반무프

반무프는 품질이 낮았다. 수백만원짜리 자전거가 흠집이 난 상태로 배송됐고, 휠·브레이크·터치스크린·배터리 등 온갖 부품이 말썽을 일으켰다. 서비스 센터 인프라도 턱없이 부족해 간단한 수리도 지연되기 일쑤였다. 반무프는 2021년에만 800만유로(약 115억원)에 달하는 보증 수리 비용이 발생해 재무 상태가 악화됐다. 독자적 생태계를 구축할만한 역량이 애초에 모자랐던 셈이다. 영국 IT 매체 테크EU는 “반무프는 ‘팔면 팔수록 더 많은 돈을 잃는 회사’였다”고 했다.

◇전기차 업체 주가 추풍낙엽

위기에 부딪힌 전기 모빌리티 업체는 반무프뿐이 아니다. 한동안 급속도로 팽창한 전기 자동차 업계도 본격적으로 옥석을 가리는 시기로 접어들었다. 리비안·루시드·피스커 같은 테슬라를 좇는 적지 않은 미국 전기차 업체가 부품이 부족하거나 제조 역량에 허점을 드러내며 주가가 급락하고 있다. 리비안 주가는 2021년 11월 상장했을 당시 130달러에 가까웠지만 요즘은 20달러 안팎에 그치고 있다. 지난 7일 전기 버스 회사 프로테라는 파산을 신청했다.

그래픽=김의균

단연 앞서가는 테슬라도 고객 불만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차체 부품이 들어맞지 않는 단차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컴퓨터가 다운되듯 달리던 차량이 멈춰버리는 사고도 종종 발생한다.

충전 인프라도 완성 단계에 도달하려면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기준 미국과 독일의 충전기 1대당 전기차 수는 각각 24대와 26대에 달했다. 국내에서는 130여 곳에 불과한 테슬라 고속 충전소(수퍼차저) 앞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충전 요금도 무섭게 오르고 있다. 국내에서 테슬라의 250kW 급속 충전 장치(V3) 요금은 1분당 570원으로 지난 1년간 4차례에 걸쳐 58.3% 인상됐다. 게다가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충전기 규격 표준을 놓고 나라별·업체별로 다툼을 벌이고 있어 소비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지난달 25일 네덜란드 근해에서 선적한 전기차의 배터리 폭발로 대형 차량 운송 선박이 불타고 있다. /네덜란드 해안경비대

전기 모빌리티에 사용하는 리튬이온 배터리도 잦은 폭발로 불안을 키우고 있다. 지난달 25일 네덜란드 해안을 지나던 대형 전기차 운반 선박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유럽해상안전청은 “최근 해상에서 발생한 화물선 화재 원인 대부분이 리튬이온 배터리 폭발 때문이었다”고 했다. 알리안츠에 따르면, 지난해 항만 운송 선박 화재는 209건으로 전년 대비 17% 증가했다.

◇‘전기차 열등생’ 도요타의 대박

폭발적이던 전기차 판매 증가율은 서서히 낮아지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증가율은 2021년 115.5%, 2022년 61.2%였으며, 올해 상반기는 40.9%였다. 전문가들은 첨단 기기에 열광하는 얼리어답터에서 실용적인 일반 구매자로 전기 자동차 고객층이 전환되는 과정에서 성장통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시장조사업체 오토포캐스트 설루션은 “2026년까지 90개 이상의 새로운 전기차 모델이 미국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지만 대부분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동운

전기차 전환이 늦어지자 완성차 업체들이 하이브리드 차량을 징검다리로 삼기 시작한 것도 눈에 띈다. 특히, ‘전기차 열등생’으로 불리며 하이브리드 차량에 집중해 온 도요타가 작년까지 3년 연속 판매량 세계 1위를 질주했다. 올해 2분기에만 전기차 부문에서 10억달러가 넘는 손실을 입은 포드의 짐 팔리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더 많은 하이브리드 차량을 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기 비행기와 선박은 걸음마 단계

세계 각지에서 전기 화물선이나 전기 비행기를 개발하고 있지만 상용화되려면 갈 길이 멀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14개의 전기 모터를 동력으로 삼는 전기 비행기 ‘X-57맥스웰’을 올해 초 공개했지만, “안전 문제가 있다”며 최근 시험 비행을 포기하고 7년에 걸친 개발 프로젝트를 끝내기로 했다. 미국 항공기 업체 이비에이션이 지난해 시험 비행에 성공한 전기 비행기는 최고 속도가 보잉737의 절반 수준인 시속 460km에 불과하고, 비행시간도 1시간에 그친다.

충전 중인 전기차. /조선일보DB

전기 동력 선박은 중국이 2017년 첫 시험 운항에 성공했다. 이후 중국, 일본, 노르웨이 등이 ‘바다의 테슬라’를 지향하며 화물선을 중심으로 전기화를 서두르고 있지만 진척 속도는 느리다. 아직 운항 거리가 짧아 중국·네덜란드의 경우 내항용으로 강에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전기 선박은 자율 운항 시스템도 동시에 장착하려는 시도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술적 난제를 해결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WEEKLY BIZ 뉴스레터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