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병어의 얼굴
생선에 밝은 친구가 강화도 대명항에서 산 회와 병어찜을 준비했다며 식구들을 모두 초대했다. 포도주로 입가심을 하고 찜보다는 회에 먼저 젓가락이 갔다. 병어를 아시는가. 나는 그간 접시에 누운 병어는 여러 번 보았지만 바다의 병어는 본 적이 없다.
위키디피아에 따르면 병어는 다음과 같은 생물이다. “병어(Pampus argenteus)는 병어과의 물고기이다. 몸 길이 60㎝가량으로 둥그스름한 마름모꼴의 형태를 갖는다. 등쪽에 푸른빛을 띤 은백색에 온몸에 벗겨지기 쉬운 잔비늘이 있다. 주둥이는 뭉툭하고 양턱에 아주 작은 이가 있으며, 머리 바로 뒷부분에 물결무늬가 있다. 병어는 대륙붕의 수심 100m 이내에 많다. 산란기는 4~8월이며, 연안의 수심 10~20m인 모래 바닥에 알을 낳는다. 갑각류·다모류 등을 먹고 살며, 큰 것은 길이가 60㎝ 정도이다. 한국·일본·중국·인도양 등지에 분포한다.”
공기보다 진한 밀도와 수압 때문일까. 고래를 비롯한 모든 물고기는 잘록한 고개가 없다. 바다의 깊이를 잃고 여러 개의 문을 통과한 뒤 지금 내 친구네 식탁에 놓여 있는 병어는 크게 머리, 몸통, 꼬리로 구분할 수 있다. 길쭉한 유선형의 일반적인 생선에 비해 병어는 둥그스럼한 유선형의 마름모꼴이라서 구분이 사실 쉽지 않다. 큼지막한 몸통 사이사이 무와 감자는 각별하게 먹음직스러웠다. 잎사귀 가장자리마다 물결처럼 일렁이는, 우리 고향에서 어탕 끓일 때 향신료로 넣는 초피나무 열매 생각이 났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회가 바닥이 났다. 거의 셰프에 버금가는 친구가 앞접시마다 병어 한 토막씩을 나누어 주었다.
병어의 입은 분홍신처럼 작다. 손바닥처럼 넓적한 몸통이라서 입이 더 작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미처 뱉지 못한 마지막 숨이 목에 걸린 듯 굳게 입을 다문 병어. 갖은양념을 벌겋게 두른 채 분간이 잘 안되는 병어. 내 몫은 몸통이었다. 포도주 한 모금을 마시고 병어의 제법 통통한 살을 집으려는 순간이었다. 바로 옆자리의 딸이 접시를 바꾸자며 이렇게 은근하게 말한다. “아빤, 생선 얼굴 좋아하시잖아요!” 대가리도 아니고 머리도 아니고, 얼굴이라는 말에 병어네 올망졸망한 가족들이 떠올라 젓가락이 얼른 나아가지를 아니했다.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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