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치형의 과학 언저리] 새만금 메타버스
[전치형 과학의 언저리][잼버리 파행]
전치형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주간
새만금 잼버리 관련 이미지 중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게임 전문 매체 ‘디스이즈게임’에 실린 사진이었다. 전북 부안 ‘새만금 메타버스 체험관’ 로비 바닥에 잼버리 참가자 100여명이 앉아서 쉬는 모습을 담았다. 아예 누워 있는 이들도 있었다. 메타버스 체험관은 잼버리 참가자들에게 디지털 콘텐츠 기술을 소개하기 위해 213억원을 들여 지난 6월 완공한 시설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자가 보기에 이곳은 자랑스러운 한국의 디지털 기술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잼버리 참가자들이 에어컨 바람을 쐬기 위해 몰려드는 ‘대피소’였다.
참가자들에게 시원한 공기를 제공하는 장소가 하필 메타버스 체험관이었다는 사실이 공교롭다. 더위에 시달리던 참가자들에게 도움이 된 것은 가상의 공간 메타버스가 아니라 그것을 체험하기 위해 지은 물리적 건물과 냉방 설비였다. 햇볕에 달궈진 몸은 메타버스가 식혀 줄 수 없다. 기사에서 지적한 것처럼 과연 메타버스 체험관이 그 값어치를 하는지, 잼버리장을 가상으로 구현하는 데 10억원을 들인 ‘세계잼버리 메타버스’ 앱은 잘 돌아가는지, 텐트 치고 야영하러 온 젊은이들에게 메타버스 체험을 꼭 제공해야 하는지 등 따져봐야 할 사안이 많겠지만, 그 더운 날 건물에서 잠시 더위를 피할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보고 있자니 마치 새만금 잼버리 대회장이 가상 공간이고 메타버스 체험관이 현실 세계 같았다. 새만금 잼버리 대회장이야말로 우리가 만든 메타버스가 아니었을까. 물리법칙과 상식이 통하는 공간인 유니버스의 제약을 벗어나 상상과 욕망을 섞어 마음껏 구현해 보는 실험적 공간이 메타버스라면 말이다. 상식을 벗어난 방식으로 방조제를 쌓고 갯벌을 없애고 급하게 매립한 다음, 잘 꾸며 놓았으니 텐트도 치고 취사도 하면서 날씨야 어떻든 12일 동안 재밌는 체험을 해 보라고 초청한 곳, 거기가 새만금 메타버스였다. 그렇다면 체험관 로비에 누워 있던 이들은 새만금이라는 비현실적인 메타버스 프로그램에 들어갔다가 그곳이 과열되고 오작동하자 냉방기가 돌아가는 현실 세계의 건물로 대피한 셈이다.
새만금 잼버리 대회장은 우리의 미래를 축소해 보여 주는 메타버스이기도 했다. 7월, 8월 날씨는 우리가 앞으로 겪을 환경이 새만금 잼버리 대회장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을 예고하는 듯했다. 도망칠 곳은 점점 줄어들고 해마다 어김없이 오는 폭염을 각자 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미래다. 책임지지 않을 이들이 무책임하게 만들어 놓은 새만금 메타버스에서 젊은이들은 마치 아바타처럼 미래를 체험했다. 메타버스에서는 명령 한번으로 버스 1천여대를 순식간에 동원해서 급조된 대피소로 실어 나르는 일이 가능했지만, 현실의 우리에게는 그렇게 과감한 대피 작전을 실행할 의지도 여력도 없을 것이다. 피난 중 노래와 춤으로 위로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두 해 전 공저한 책 ‘호흡공동체’의 폭염에 관한 장을 마무리하며, “이제 피서는 끝났다. 피난 준비를 시작할 때다”라고 쓰고서 제법 멋진 표현이라고 뿌듯해했다. 이제 그 경솔함을 반성하고 정말 피난 준비도 하고 실행도 해야 할 때다. 기후변화에 따른 보건의료체계를 연구하는 서울대 황승식 교수는 온열질환으로 죽는 사람이 없도록 7월 말~8월 초 두주 동안 전 국민이 휴식기를 갖자고 제안한다.(한국일보) 올해도 8월13일까지 29명이나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 “폭염에 도움이 되는 조치는 에어컨이 있는 실내 시설에 있는 것뿐”이라는 황 교수의 말은 우리가 얼마나 멀리 와버렸는지 깨닫게 한다. 나무 그늘이나 선풍기 바람으로 버틸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는 것이다.
일상적 방법으로 폭염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면, 우리는 결국 메타버스 체험관 같은 것들을 만들어 냉방기를 켜고 대피해야 할지도 모른다. 황 교수는 쪽방촌 같은 사회적 약자 거주 공간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등 주거 환경 개선 사업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그런 적극적인 행정이 메타버스가 아닌 현실에서 제때 실행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만약 예산이 없어 주거 환경 개선이나 무더위 쉼터 확충이 불가능하다면, 예산 확보가 비교적 용이할 메타버스 체험관이나 생성형 인공지능(AI) 체험관을 동네마다 짓고 그 로비에서 폭염을 피하는 방법도 있다. 이것도 새만금 잼버리 대회의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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