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미아 될 뻔한 보이저 2호… 실수로 2도 뒤틀린 안테나를 복구하라
[박건형의 홀리테크] NASA ‘심우주 통신망’ 작전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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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현지 시각)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에서는 태양계 바깥의 탐사선을 향해 신호를 발사했습니다. 일상적인 명령을 보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신호를 받는 주인공은 보이저 2호. 1977년 8월20일 발사된 뒤 1만6000일 이상을 날고 있습니다. 얼마 뒤 NASA 성간(星間) 탐사 프로젝트 책임자인 수전 도드와 팀원들은 보이저 2호에 잘못된 명령어가 전송됐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스페이스닷컴은 “도드의 팀은 사전에 명령어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했지만, 실제 전송할 때 이전 버전을 보이저 2호에 보내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무려 지구에서 200억km 떨어진 보이저 2호의 안테나는 2도가량 비틀어졌습니다. 지구에서 보내는 신호를 받을 수도, 지구로 신호를 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응답하라 보이저 2호”
이 문제는 사실 몇 달만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보이저 2호에는 돌발 상황이나 통신 두절 등을 대비해 자동으로 시스템을 복원하는 소프트웨어 옵션이 탑재돼 있습니다. 이 옵션은 정기적으로 자동 실행되는데 다음 작동 시기는 10월 15일이었습니다. 안테나를 지구 방향으로 재조정하는 것도 이 옵션에 포함돼 있습니다.
하지만 NASA 과학자들은 최후의 수단만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보이저 2호의 메모리(RAM)는 68KB(킬로바이트)에 불과하고 보조 기억장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카세트테이프보다도 구형입니다. 수집한 데이터를 지구로 전송하면 그 자리에 새로운 데이터를 덮어써야 하고, 백업 장치도 없다 보니 통신이 되지 않는 기간의 자료는 영원히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일주일이 넘는 회의와 검토 끝에 NASA는 시도해볼 만한 방법을 찾아냅니다. 보이저 2호가 있는 방향으로 ‘안테나 각도를 바꾸라’는 신호를 최대한 강하게 여러 차례 보내면서 미약한 신호라도 감지하도록 하는 겁니다. 간단한 일 같아 보이지만, 복잡하고 정교한 계산과 정밀한 송신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거대한 우주라는 공간에서 먼지에도 비견할 수 없는 조그만 탐사선을 겨냥한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37시간의 기다림 끝에 복구
8월 2일 오전, 호주 캔버라에 있는 70m, 100㎾(킬로와트) 접시 안테나를 통해 최대 출력의 신호가 발사됐습니다. 이 안테나는 JPL이 전 세계의 초대형 안테나를 연결한 ‘딥스페이스 네트워크’ 또는 ‘심우주(深宇宙) 통신망’으로 불리는 시스템의 일부인데, 보이저 2호는 궤도 때문에 지구 남반구에 있는 안테나를 통해서만 통신이 가능합니다. 이 신호가 보이저 2호에 제대로 도달했는지, 보이저 2호가 자세를 바로 고쳤는지 확인하는 데만 무려 37시간이 걸립니다. 태평양 표준시 기준 8월 3일 오후 9시 30분에 보이저 2호의 신호가 호주 캔버라에 도착했습니다. 2주 만에 우주 미아를 되찾은 겁니다.
쌍둥이 탐사선인 보이저 1·2호는 인류의 우주 탐사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폴로 탐사 계획이 끝난 뒤 NASA 과학자들은 지구 바깥쪽 궤도를 도는 외행성(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 탐사를 목표로 삼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보이저 계획이 탄생했습니다. 보이저 1호와 보이저 2호는 목성·토성을 각기 다른 경로로 탐사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보이저 1·2호는 이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습니다. 이후 보이저 2호는 토성을 지나 천왕성·해왕성을 최초로 근접 비행했고, 보이저 1호는 토성의 위성 타이탄을 관측한 뒤 아예 최초로 태양계의 경계를 넘은 물체가 됐습니다.
◇미래를 내다본 비밀 프로젝트
보이저의 오랜 항해에는 NASA 과학자들의 비밀 전략이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 정부는 NASA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삭감하기 위해 수많은 계획을 축소하거나 통폐합·폐지했습니다. 하지만 NASA JPL 과학자들은 보이저 1·2호에 당시 최고의 기기와 기술을 집약합니다. 당시 계획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은 “최소한 천왕성까지는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고 입을 모읍니다. 보이저 2호가 천왕성을 통과한 것은 1986년, 또다시 계획이 연장돼 해왕성을 통과한 것은 1989년 2월입니다. 그 후로 34년이 지난 지금도 날아가는 것을 보면 NASA가 보이저 1·2호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보이저 1·2호는 무언가에 부딪혀 사라지지 않는 이상 끝없이 지구에서 멀어지는 운명입니다. 문제는 지구와 통신할 수 있는 동력입니다. 보이저는 ‘방사성 동위원소 열전기발전기(RTG)’로 동력을 얻습니다. 플루토늄-238이 자연 반감되면서 발생하는 열을 전기로 바꾸는 원자력 배터리의 일종입니다. 플로토늄-238의 반감기는 87년으로, 전력 생산량은 매년 약 4W씩 줄어들고 있고, 이미 절반 이상 소모됐습니다.
NASA는 통신을 유지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부터 선체 전압 안전장치를 위한 예비 전력을 통신에 끌어다 쓰고 있고 과학 관측 장비도 순차적으로 중단할 예정입니다. 2026년까지는 일단 통신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 후엔 언제 작별을 고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1990년 보이저 1호가 명왕성 근처에서 방향을 지구 쪽으로 돌려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저명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자신이 촬영을 제안한 이 사진에 나타난 지구에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는 “지구는 우주라는 거대한 극장의 아주 작은 무대”라며 “우리가 아는 유일한 보금자리인 창백한 푸른 점을 소중히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했습니다. 쌍둥이 보이저에는 관측 장비는 물론 골든 레코드가 실려 있습니다. 외계 생명체를 만날 경우를 대비해 지구의 자연과 소리, 음악, 55개 언어 인사말이 담겨 있습니다. 어쩌면 우주인에게 인류와 지구의 존재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것이 보이저 1·2호가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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