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방황하다 도전한 `마지막 콩쿠르`… 활 끝에 진심담아 전 세계 울리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서 우승"
최악의 몸 상태 불구… 음악과 영접하며"
스스로의 실력 믿고 최고의 무대 선사"
"넓은 역량가진 올바른 음악가 될 것"
월간객석과 함께하는 문화마당 바이올리니스트 김계희
김계희의 연주를 처음 들었던 때를 떠올려본다. 2015년이었다. 2014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박성용영재특별상을 받으며 금호아트홀 리사이틀 기회를 부상으로 얻었다. 작은 체구의 그가 시원시원한 음색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며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다소 긴장된 눈빛이었지만, 음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당시 수첩에 '오래오래 관찰하고 싶은 바이올리니스트'라고 적어 두었다. 그리고 지금,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이 연주자가 깜짝 소식을 들고 왔다. 그동안 김계희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 궁금증이 일렁였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우선, 우승을 축하한다. 2015년 리사이틀을 인상 깊게 관람한 적이 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서울대 음대 학부 과정을 졸업한 이후 독일 뮌헨으로 건너갔다. 올해 2월 뮌헨 음대 대학원을 졸업했고, 그 뒤로는 한국에서 지내다가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참가하게 됐다."
-이번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도전했다고.
"막연히 한국 나이로 30세까지는 콩쿠르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작년까진 나름대로 콩쿠르 계획이 있었고, 그에 맞춰 레퍼토리도 미리 준비하곤 했는데, 그 일정이 끝나니 더 이상 콩쿠르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 반년 정도 방황하다 올해 봄, 김영욱 교수님에게 10년 만에 처음으로 크게 꾸중을 들었다. 이렇게 포기할 거냐며. 나를 아끼는 교수님이 진심으로 걱정되어 해주신 말을 듣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콩쿠르 준비뿐이었다. 그렇게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도전했다."
-어떤 압박감에 시달렸던 건가. 콩쿠르 내내 아팠다고 들었다.
"한 달이란 준비 기간 동안 잠을 잘 못 잤다. 너무 바쁘게 지내다 콩쿠르에 출전했다. 모스크바에 가기 전부터 육체적으로 힘들었는데, 도착하니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콩쿠르 기간 내내 몸이 안 좋았다."
-러시아는 지금 전쟁 중이다. 콩쿠르 참가에 있어서 여러 고민이 있었을 텐데, 복잡한 상황에서 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아무래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나가기로 결심하고 준비하는 동안, 그리고 콩쿠르 기간에 러시아 반란도 있어서 마음이 어려웠다. 그렇지만 음악만을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결국, 음악 하나만 믿고 도전한 콩쿠르였다."
-2016년 에네스쿠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이후, 7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그 사이에 변화가 있었다면.
"지난 몇 년 간 꽤 큰 변화가 생긴 것 같다. 음악을 생각하는 관점이 바뀌었다. 에네스쿠 콩쿠르에 참가했을 때는 국내에서 공부하던 시기였다. 뮌헨으로 유학 가며 자연스럽게 여러 경험들이 음악에 투영됐다. 그렇지만 교육보다 더 많은 변화를 주는 건 개인적인 경험이다. 그래서 어디서 사는지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그 시간들이 모여 '나'라는 사람이 되는 거니까."
◇아픈 몸을 이끌고 나간 차이콥스키 콩쿠르
-2차 무대를 보니 땀을 많이 흘리더라. 몸이 많이 아팠던 건가.
"모든 무대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픈 몸을 이끌고 연주하는 게 정말 힘들었는데, 음악과 영접했다고 해야 할까. 그런 순간이 있어서 행복했다."
-가장 아쉬웠던 무대도 있을 텐데.
"알렉산더 루딘/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파이널 무대가 아쉬웠다. 사실 그날이 콩쿠르 기간 중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무대 오르기 직전까지 대기실에서 거의 30분을 잤다. 잠에서 깨어나 스스로를 믿으며 집중했다."
-콩쿠르를 준비하며 파가니니 '24개의 카프리스'와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준비하는 데 가장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이 두 곡은 바이올리니스트라면 어릴 때부터 자주 접했을 곡인데, 오랜만에 이 곡을 꺼내며 느꼈던 감정이 궁금하다.
"파가니니 '24개의 카프리스'는 1차 지정곡이었다. 이 곡은 어릴 때 악보를 읽어본 정도가 다였어서 한 달 만에 준비하는 게 쉽지 않았다. 게다가 지정곡이어서 다른 참가자들과 비교가 될 것 같아 부담이 컸다.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6년 만에 다시 연주한 곡이다. 큰 콩쿠르에서 완전히 내 것이 되지 않은 곡을 연주하면 리스크가 크다. 아무리 어릴 때 많이 연습했던 곡이어도 새로 다시 꺼내면 느낌이 많이 다르다. 그동안 나의 경험이 쌓였는데, 곡에 대한 감정과 해석이 완전히 같을 순 없다. 20대 초반에는 곡의 구조, 전체적인 흐름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독일 유학 시절에는 조금 더 자유롭게 연주하는 것에 관심이 생기더라. 최근 2년 정도는 자유와 구조적인 밸런스를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한 곡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보통 어떠한 과정을 거치나.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 꼭 녹화를 하는 편이다. 녹화된 비디오를 통해 연주할 때 느끼지 못했던 부분들을 많이 발견한다."
◇앞으로 채워 나가야 하는 것들
-콩쿠르가 끝나고 여러 공연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 논의 중인 연주들이 많아 확실히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9월에 러시아에서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1975~)가 음악감독으로 있는 더 스타스 온 바이카 페스티벌에 초청됐다."
-클래식 산업도 이제 리코딩과 세일즈 분야에서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아티스트가 나오기도 한다. 앞으로 커리어 방향성은 어떻게 잡고 있는지.
"가장 중요한 건 올바른 음악가로서의 성장이지 않을까. 물론 음악가에게 상품성을 요구하는 시대라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가장 근본적인 걸 놓치면 결국 본인이 먼저 지치게 된다. 중요한 건 음악적 역량이 넓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앞으로 2~3년 정도의 레퍼토리를 미리 구성해 성장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노력해야 하지 않나 싶다."
-이제 곧 30대에 접어든다. 10년 뒤에는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
"앞으로의 10년이 나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것 같다. 당장 올해 연말까지의 계획을 짜는 것도 쉽지 않은데, 10년 후는 상상이 잘 안 된다. 다만, 10년 뒤에도 음악을 사랑하고, 진심을 담아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길 바란다."
글= 장혜선(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차이콥스키 콩쿠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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