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올림픽 차출이 치명타였나… 112승 차우찬의 허무한 은퇴, 박수 받을 기회 없었다

김태우 기자 2023. 8. 1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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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프리미어12 대표팀에 차출됐던 당시의 차우찬 ⓒ스포티비뉴스DB
▲ 2021년 열린 도쿄올림픽 당시의 차우찬. 차우찬은 이 대회 이후 1군 복귀에 어려움을 겪었다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사직, 김태우 기자] 래리 서튼 롯데 감독은 17일 현역 공식 은퇴를 선언한 차우찬(36)이 캠프 때부터 재기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였다고 회상했다. 이 베테랑도 예전처럼 공을 던질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명예롭게 마무리를 할 기회를 원하고 있었다.

서튼 감독은 17일 사직 SSG전을 앞두고 “캠프 때 처음으로 얼굴을 봤고, 같이 시간을 보냈다. 캠프 때부터 의욕적으로 몸 관리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고 추억하면서 “커리어의 마지막을 향하고 있는데 (몸 상태를) 푸시해서 멋진 마무리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차우찬에게 그런 멋진 마무리의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결국 1군에 돌아오지 못한 채 은퇴를 선언했다.

롯데 구단은 17일 차우찬의 은퇴 소식을 알렸다. 롯데 구단은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스프링캠프 때부터 시즌 중까지 열심히 준비했지만 몸 상태와 컨디션이 따라주지 않아 은퇴를 결정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어깨 부상으로 수술 경력까지 있는 차우찬은 올해 후반기 복귀를 목표로 성실하게 재활했지만 이미 한 번 망가진 어깨 상태는 돌아오지 않았다.

꾸준하게 재활을 하며 한때 진도가 괜찮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6월 10일 퓨처스리그 SSG 2군과 경기에 등판해 1이닝을 던진 것이 공식 출전 마지막 기록이었다. 서튼 감독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몸을 만들었지만 생각보다 몸이 올라오지 않으면서 은퇴라는 결정을 내리게 됐다”면서 “운동 선수가 평생 은퇴를 안 할 수는 없다. 야구를 못할 몸 상태가 오고, 은퇴를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은퇴를 발표하는 건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고 아쉬워했다.

군산상고를 졸업하고 2006년 삼성의 2차 1라운드(전체 7순위) 지명을 받은 차우찬은 데뷔 초기에는 고질적인 제구 문제로 고전하던 유망주였다. 2006년 1군 무대에 데뷔했으나 2007년 23경기에서 평균자책점 6.11, 2008년 25경기에서 평균자책점 4.17, 2009년 42경기에서 평균자책점 6.09로 부진했다. 그러나 꾸준히 노력한 결과 2010년부터는 팀에서 중요한 투수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 2015년 한국시리즈 당시의 차우찬 ⓒ스포티비뉴스DB
▲ 차우찬은 삼성 마운드의 기둥으로 활약했다 ⓒ스포티비뉴스DB

좌완으로 시속 140㎞대 중반의 빠른 공을 던질 수 있었고 여기에 묵직한 구위와 슬라이더를 갖춘 차우찬은 삼성 마운드의 애니콜로 활약했다. 때로는 선발로, 때로는 불펜에서 팀 마운드에 힘을 보태며 ‘삼성 왕조’의 핵심 전력으로 뛰었다. 다소간 부침은 있기는 했지만 큰 부상 없이 성실하게 뛰었던 선수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 결과 2017년 시즌을 앞두고는 좌완 에이스가 급했던 LG와 4년 총액 95억 원의 대형 프리에이전트(FA) 계약까지 하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LG 이적 후 2017년 10승, 2018년 12승, 2019년 13승을 거두는 등 자신의 몫을 충실히 했다.

차우찬의 성실함은 소속팀에서만 빛나지 않았다. 대표팀의 단골 손님이기도 했다. 좋은 구위에 배짱, 그리고 다양한 활용성을 가지고 있어 많은 대표팀 감독들이 선호하는 선수였다.

201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2015년 프리미어12, 2017년 WBC, 2019년 프리미어12에 참가하며 태극마크를 달고 팀에 헌신했다. 그러나 자신의 마지막 국가대표 대회였던 2020년 도쿄올림픽(코로나19로 2021년 개최) 출전은 무리였다는 지적이 많다.

차우찬은 왼 어깨에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이 문제는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차우찬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2020년 13경기 등판에 그친 것도 이 때문이다. 2021년 5경기에 나가 이제 막 재활의 날개를 펼치려고 했을 때 대표팀에 차출됐고, 차우찬은 차출 이후 더 이상 1군에서 공을 던지지 못했다.

▲ LG 소속 당시의 차우찬 ⓒ곽혜미 기자
▲ 차우찬은 마지막 재기 의지를 불태웠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롯데 자이언츠

차우찬 개인적으로 올림픽 출전에 대한 열망이 굉장히 컸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 기점 이후 차우찬은 우리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이 때문에 당시 차출 결정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LG도 적지 않은 손해를 봤다.

차우찬은 2022년 1군 무대에 한 번도 등판하지 못했다. 좌완이 급했던 롯데는 차우찬의 후반기 복귀를 염두에 두고 연봉 5000만 원에 계약해 재기를 기대했지만 재활 기간이 길어지면서 차우찬도 스트레스를 크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더 이상 경쟁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17일 은퇴를 선언했다.

차우찬은 KBO리그 통산 112승을 거둔 좌완이다. 류현진 김광현 양현종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457경기에 나가 성실하게 자신의 기록을 쌓았다. 이대로 인사 없이 사라지기는 아쉬운 선수다. 약간은 허무한 은퇴 속에서 차우찬이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기회가 있을지도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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