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 통념 깬 막스플랑크硏…기업 184곳 나왔다
“기초연구 사업화 쉽지 않지만 혁신적 발견 땐 게임체인저 돼”
16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 위치한 막스플랑크연구회 본부.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조형물이 설치되어있는 정문을 통과하고 나면 막스플랑크 소속 노벨상 수상자들의 흉상들이 로비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내부에 들어서자 마자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지난 2014년 51세의 나이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해 막스플랑크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던 스테판 헬 박사의 얼굴이 보인다. 그는 ‘유도방출억제(STED) 현미경’을 개발해 노벨상을 받은 학자로 알려져있지만, 막스플랑크 내에서는 동시에 ‘아베리어’와 ‘아베리어 인스트러먼트’라는 두 개의 회사를 창업한 기업가로 평가받는다. 두 회사는 헬 박사의 기술을 기반으로 한 형광염료와 유도방출억제 현미경을 각각 개발·제조하고 있다.
막스플랑크연구회 본부에서 만난 막스플랑크 이노베이션(MPI)의 베른트 크토르테카 박사는 “막스플랑크 연구회의 우수하고 자율적인 연구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이를 ‘제품과 사업화의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을 대표하는 기초과학 연구소이자 단일기관으로 세계 최다 노벨상을 배출한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노벨상 사관학교’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독일의 대표 연구소이자 유럽 최대 응용 연구 개발 조직인 프라운호퍼 협회와 달리 기초과학 연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사업화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크토르테카 박사는 “기초 연구는 사업화가 어렵다고 하지만 연구 과정에서 일어나는 혁신은 ‘게임 챌린저’가 될 수 있다”며 “이것이 막스플랑크 이노베이션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일례로 막스플랑크 소속 화학자인 카를 치글러 박사가 개발한 저압 폴리에틸렌 합성기술을 통해 막스플랑크가 벌어들인 기술료만 5억 유로(약 7300억원)가 넘어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MPI는 독일 전역에 펼쳐있는 모든 막스플랑크 연구소를 위한 기술 이전 기관으로 1970년 설립돼 올해로 53년을 맞았다. 막스플랑크 소속 연구자의 특허 출원을 돕고, 이 기술을 사업체에 이전하거나 직접 자기가 개발한 기술을 통해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스테판 헬 박사가 동료들과 함께 창업을 하게된 배경에도 막스플랑크 이노베이션의 전폭적인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 막스플랑크연구소의 물리학자이자 200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테오도어 볼프강 헨슈 교수 역시 동료들과 함께 자신의 기술을 기반으로 한 메로 시스템즈 라는 회사를 만들었다.그는 빛을 원자와 분자 단위까지 해석해 색을 구별해내는 정밀 분광기술을 개발했고, 이 기술은 1000만분의 1 이상의 정확도를 갖는 정밀시계와 위성항법장치(GPS) 등에 활용된다. 이들 기업을 포함해 현재까지 총 184개 기업이 막스플랑크에서 분사했다. 그 중 현재 75%이상의 기업이 생존해있고, 6500개가 넘는 일자리가 창출됐다. 항암제 수텐트를 개발하고 화이자에 인수된 수젠(sugen)이 막스플랑크의 대표 창업 기업 중 하나다.
막스플랑크에서 나온 모든 발명이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약 1000개의 학술적 성과 중 1개가 사업과 연계된 기술 이전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프로젝트 10개 중 1개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다. 대신 소수의 성공(블록버스터)가 전체 수익의 80%를 차지할 만큼 큰 성공을 거둔다. ‘하이리스크-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인 셈이다.
시모네 슈바니츠 막스플랑크 연구회 사무총장은 “막스플랑크 내에서는 ‘과학자들이 과학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연구자들의 자율적으로 주제를 정하고 오랫동안 ‘하이리스크’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장기간 지원하는 게 우리의 철칙”이라며 “이러한 막스플랑크의 환경이 노벨상과 사업화 등 다방면에서 성과를 내는 데 밑바탕이 됐다”고 설명했다. 자기공명영상장치(MRI)의 이미지 처리 기술과 속도를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 ‘플래시 MRI’ 는 막스 플랑크에 약 1억 5000만 유로(2200억원) 수익을 가져다줬지만 , 실제 수익을 내는 데 까지 20년이 걸렸다.
기초과학의 사업화에 대한 막스플랑크의 도전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도영 한국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은 “기초연구가 사업화로 이어지는데는 응용 연구에 비해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 있지만, 이 둘을 연결하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한국에서도 기초과학이 성과가 나오고 있는 시점에 기술사업화에 대한 부분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뮌헨 이새봄기자/과학기자협회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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