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폭염 땐 비상대피’·‘입국자 명단 확인’ 매뉴얼 안 지켰다

박지원 2023. 8. 1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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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버리 위기대응매뉴얼’ 살펴보니
영지 밖 대피소 7곳 지정까지 해놓고
조직위 “철저히 준비” 홍보에만 급급
정작 폭염 심각단계 이르자 조치 외면
샤워장 등 협력업체 담당자 배치 명시
현실은 개막 두 달 전까지 업체 미정
대회 참가자 현황 관리 제대로 안 돼
조기철수 때 미입국자 숙소 배정 ‘촌극’

새만금 잼버리 조직위원회가 잼버리 개막을 두 달 앞두고 마련한 위기대응매뉴얼에 폭염과 같은 재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대응 방안과 책임 부서가 세부적으로 명기돼 있었음에도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위기대응매뉴얼에 위생시설 담당 업체 직원도 현장에 두도록 적시돼 있었지만 대회 개막 직전까지 업체를 선정하지 못해 ‘미정’ 상태인 채로 매뉴얼이 만들어졌다.

세계일보가 17일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위기상황 대응 매뉴얼’ 전문을 살펴보면 조직위는 폭염경보와 같은 기상경보가 내려질 경우 상황판단회의를 열고 비상대피를 전면 실시하는 등의 조치를 하도록 돼 있다. 73쪽에 달하는 매뉴얼에는 자연재난과 시설·설비 문제, 각종 범죄, 감염병 등 9개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방안이 상세히 열거돼 있다.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에 참석한 대원들이 지난 4일 전북 부안군 잼버리 델타 구역 천막 아래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다. 뉴스1
◆‘무용지물’된 73쪽짜리 매뉴얼

매뉴얼에 따르면 조직위는 폭염특보와 같은 기상특보에 주의·경계·심각 세 단계로 나눠 대응하도록 돼 있다. 개막부터 조기 퇴영까지 잼버리 시기 내내 부안군에 내려졌던 폭염경보 상황에서 조직위는 상황판단회의 개최, 비상대피 전면 실시, 위기 대응 협력 기관 및 단체 지원 협조 요청, 기상정보 전파 및 피해·복구 상황 조사 등을 실시하도록 돼 있다. 대피를 위한 영지 밖 7개 비상대피소 등도 매뉴얼에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그러나 조직위는 개막 후 폭염경보 상황에 따른 이 같은 매뉴얼상의 조치들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 그런 영향으로 온열질환자가 속출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매뉴얼에는 참가자 명단을 확인하고 관리하는 주체도 명기돼 있었다. 그렇지만 태풍으로 참가자들이 조기 철수하는 과정에서 입국조차 하지 않은 참가자들의 명단이 전달되는 등 참가자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아 매뉴얼이 애초부터 보여주기식으로 만들어진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매뉴얼에 따르면 행사운영본부와 행사지원본부 등이 참가자 명단을 확인하고 위기 상황 발생 시 대피자와 잔류자 등 참가자들에 관한 사항을 조사하는 일을 맡도록 돼 있다. 그러나 태풍 카눈으로 인해 잼버리 조기 철수 결정이 내려진 뒤 참가자들이 전국 각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실제로는 입국조차 하지 않은 예멘·시리아 스카우트 대원들이 숙소에 배정되는 등 참가자 파악이 전혀 돼 있지 않은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전혀 작동하지 않은 채 무용지물이 된 매뉴얼이지만 조직위는 개막을 앞두고 최창행 사무총장 언론 인터뷰 등에서 철저한 준비를 강조하는 수단으로 매뉴얼을 활용했다. 김관영 전북도지사도 지난 3월 전북도의회 도정 질의에서 폭염과 해충 피해 대책을 주문받고서 위기대응매뉴얼을 마련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2023 새만금 세계 잼버리 대회장에 설치된 간이화장실. 연합뉴스
◆개막 코앞인데 위생시설 담당업체 ‘미정’

개막을 코앞에 뒀음에도 여전히 대회 준비가 덜 돼 있었던 당시 상황도 매뉴얼에서 드러난다.

매뉴얼의 시설·설비상 문제 위기상황 대응 방안에는 설비·장비 고장 시 신속 조치를 위해 담당 업체 직원이 잼버리 현장에 상주하도록 돼 있다. 문제는 화장실·샤워장·분리수거장과 같은 위생시설을 포함한 상부시설 담당 업체가 당시까지도 미정으로 적혀 있었다는 점이다.

매뉴얼이 마련된 것이 개막까지 불과 약 두 달이 남은 시점이었음에도 위생시설 담당 업체조차 확정되지 않은 미흡한 준비 상황이 매뉴얼에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담당업체 직원이 상주하도록 한 또 다른 시설인 전력·통신 시설과 기반 시설의 경우 담당 업체가 결정돼 매뉴얼에 업체 이름이 명기돼 있다.

이처럼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결과, 개막 직후 잼버리는 화장실과 샤워장 등 위생시설 준비 미흡과 관리 부실로 참가자들의 원성을 샀다. 급기야 공무원과 자원봉사자 등을 위생시설 관리 인력으로 긴급 투입하고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직접 화장실 청소에 나설 정도로 위생시설 문제가 심각했다.
잼버리 후폭풍 벨기에 잼버리 대표단이 지난 1일 공식 인스타그램에 게재한 물웅덩이 위의 플라스틱 팔레트에서 텐트를 치는 모습. 벨기에 잼버리 대표단 인스타그램
◆침수 회의서는 배수 업무 떠넘기기

잼버리 부지 배수 문제를 놓고도 개막 직전까지 관계 기관들은 업무를 서로 떠넘기기 급급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실이 이날 여성가족부와 잼버리 조직위 등으로부터 받은 ‘잼버리 부지 배수 관련 회의’ 자료에 따르면 주최 측은 지난해 8월1일부터 올해 6월29일까지 약 1년간 7번의 침수 대책 회의를 열었다. 마지막 회의까지도 관계 기관들은 배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침수 대책 회의에서 농어촌공사와 전북도는 배수로 손상 문제와 관련해 서로 책임 떠넘기기를 했다. 농어촌공사가 ‘침하 구간 성토(흙 쌓기)에 많은 양의 토사가 필요해 현실적으로 간이 펌프장 조성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전북도는 ‘침하 구간이 광범위해 간이 펌프장 조성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는데 이는 각자의 담당 업무인 흙 쌓기와 간이 펌프장 조성에 관한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식의 면피성 발언이 7차례의 회의에서 반복된 끝에 결국 간이 펌프장 등 강제 배수 시설을 설치하고 기존 배수로를 정비한다는 계획이 세워졌다. 잼버리 총사업비 내역을 보면 전북도는 올해 국비 15억·도비 15억원 총 30억원을 간이 펌프장 100개소를 설치하는 데 사용했다. 그러나 일부 배수 시설은 개막까지 공사가 완료되지 않았고 대회 직전에도 부안군에 비가 내리자 야영장은 물에 잠겼다.

박지원·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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