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신고로 99% '일단 멈춤'···두려워 말고 알려야"
노윤호 법무법인사월 대표변호사
과거 학폭위 사건 축소·은폐 많아
폭력 묵인 경험도 트라우마 남아
원인 밝히려 '학폭 그이후' 펴내
사적 복수 자신도 파괴, 해법 아냐
보복 두려워 신고 안하면 피해 반복
삶 흔들리지 않도록 용기 가져야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해 징계위원회가 열리고 가해행위가 확인돼 가해 학생이 강제 전학 등의 징계 조치를 받게 되면 대부분 우리는 ‘사건이 종결됐다’고 본다. 하지만 피해 학생들 중에는 ‘사건 종결’ 후에도 학폭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가해자를 처벌했는데도 왜 피해자는 회복되지 않는 것일까. 이들의 근본적인 치유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국내 1호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인 노윤호(사진) 법무법인사월 대표변호사는 숱한 학폭 사건을 다루며 이 같은 의문이 늘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또 최근 들어 유명인들의 과거 학폭을 대중에 폭로하며 응징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의 ‘학폭 미투’가 연이어 터지는 가운데 학폭 피해자의 사적 복수극을 그린 드라마 ‘더글로리’가 대중의 각광을 받는 모습을 보며 고민은 더 깊어졌다.
“종종 해외 인터뷰를 하는데 ‘왜 한국은 과거 학폭의 폭로가 이렇게 자주 일어나고 그 결과로 유명인들이 아예 활동을 못 하게 되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해요. 한국은 왜 이렇게 학폭 이슈에 민감하냐는 거죠. 저도 줄곧 고민하던 질문인데 학폭 사건을 다룬 지도 8년 차가 됐으니 고민만 하지 말고 직접 추적해보자는 생각을 했죠.”
그렇게 고민한 결과물이 최근 출간한 책 ‘학교폭력, 그 이후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책에서 그는 ‘학교폭력’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부터 2004년 ‘학교폭력예방법’이 제정되고 심각한 사회문제로 다뤄지게 된 오늘날까지를 폭넓게 들여다봤다. 학폭 피해를 어느 정도 극복한 학생들을 직접 만나 심층 인터뷰도 했다.
노 변호사는 학폭이 그저 애들 싸움 혹은 학교가 숨겨야 할 치부 취급을 받으며 많은 사건을 흐지부지 마무리했던 학교의 역사가 오늘날 ‘학폭을 응징하는 사회’를 만든 원인이라고 봤다. 그는 “과거에는 각급 학교에 학폭위가 설치돼 있었기에 사건의 은폐·축소가 가능했고 실제로 많았다”며 “제도적 한계 속에서 제대로 된 결말을 얻지 못한 채 피해자가 오히려 학교를 떠나는 일이 많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모두가 학폭이라는 집단적 경험을 하며 해소되지 못한 여러 감정을 품고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노 변호사는 “과거의 교실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뿐 아니라 폭력을 묵인·방조했던 수많은 방관자가 있었다”며 “우리 내면에 있는 그때 피해자를 모른 척했다는 일종의 죄책감이 학폭 가해자들을 용서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런 과거가 있으니 이 응어리가 풀릴 때까지 가해자를 엄벌하고 더 화를 내도 괜찮은 걸까. 결코 아니다. 노 변호사는 특히 드라마 ‘더글로리’의 주인공처럼 사적 복수에 나서는 것은 결코 피해자를 위하는 길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동은이가 복수를 위해 얼마나 많은 범죄행위를 하는가”라며 “사적 복수는 상대와 나를 동시에 파괴하는 행위”라고 단언했다.
그는 2020년부터 학교가 아닌 외부 기관인 학교폭력대책심의위에서 학폭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과거처럼 사건의 은폐·축소가 결코 쉽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제대로 사건을 매듭짓고 피해자가 트라우마 회복에 나설 수 있는 분위기가 이미 조성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피해자가 학폭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환점은 필요하다. 노 변호사는 피해 학생의 신고가 바로 그 전환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학폭이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피해를 중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신고 등을 통해 학폭 사실을 주위에 알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학폭은 피해 학생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어른들이 개입할 수 있도록 제도도 마련돼 있으니 적극 활용할 것”을 조언했다. 또 가해자들의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꺼리는 학생들에게도 “사례를 보면 외부에 알리지 않았을 때 가해자들의 2차·3차 타깃이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신고를 하면 99%의 학폭은 일단 중단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하나 필요하다면 조금은 단단한 마음이다. 노 변호사는 “학폭 피해자들에게는 가해자가 무척 큰 존재처럼 느껴지겠지만 사실 결코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고 가해자로 인해 삶이 흔들리도록 두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글·사진=김경미 기자 kmkim@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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