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대통령의 결기에 관료들이 답할 차례다
총선보다는 미래를 내다봐야
곧 발표될 내년 예산 편성은
1회성 퍼주기 지출 확 줄이고
성장과 일자리에 우선순위 둬야
윤석열 대통령에게 가장 큰 악몽은? 아마도 내년 총선에서 지는 것이다.
집권 여당이 진다면 기세가 오른 야당은 정부를 패싱하고 입법 독주에 더욱 열을 올릴 것이다. 여당에서는 차기 잠룡들이 튀어나오며 구심력은 사라지고 원심력만 더 강해질 것이다. 대통령에겐 상상도 하기 싫은 '조기 레임덕' 시나리오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최근 "선거에서 지더라도"라는 말을 불쑥 꺼냈다. 그것도 공개 석상에서.
지난달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가 바로 그 장소였다. 대통령은 "표를 의식한 매표 복지예산은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며 "선거에서 지더라도 건전 재정 기조를 유지해달라"고 장관들에게 신신당부했다.
뭐가 그렇게 절박해서 대통령은 그런 표현을 한 것일까.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나랏빚은 404조2000억원 늘어났다. 앞선 이명박 정부(180조원)와 박근혜 정부(170조원) 때 늘어난 채무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규모다. 최근 10년을 놓고 비교해봤더니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증가폭이나 속도가 주요 선진국 가운데 단연 1위다. 정치권의 선심성 현금 살포와 확장 재정으로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 위기가 있었고, 복지 수요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팬데믹을 겪거나 고령화, 양극화에 직면한 건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그나마 경기가 좋을 때는 불어난 세수로 재정지출을 충당할 수 있다. 하지만 올해는 1%대 저성장이 예고된 상황에서 상반기 세수가 작년보다 40조원 가까이 덜 걷혔다. 그 결과 나라살림인 관리재정수지는 80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개인으로 따지면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신용불량, 기업으로 보면 정상 영업이 어려운 파산 상황에 직면한 것과 마찬가지다.
재정위기에 직면한 건 선진국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은 1년 만에 재정 적자가 2배 이상 늘었다는 이유로 12년 만에 국가신용등급을 강등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국가부채가 1000조엔을 돌파한 일본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 비율(247%)이 우리나라보다 5배 이상 더 높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은 글로벌 기축통화를 보유한 국가인 동시에 해외 자산 규모가 우리나라와 비교가 안 될 만큼 많은 국가들이다.
정작 문제는 지금부터다. 지난달 역대급 홍수에 이어 이달 태풍 카눈까지 겹쳤다. 기획재정부는 재해 수습에 예비비를 동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치권에서는 적자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추경 예산을 편성하라는 요청이 끊이질 않는다.
돌이켜보면 3년 전 21대 총선은 '돈 풀기 선거'였다. 코로나 지원이라는 명목 아래 정치권이 앞다퉈 재난지원금을 살포했다. 선거 공약은 묻히고 재난금 지원을 전 국민이 받느냐, 하위 70%가 받느냐로 여야가 연일 밤을 새웠다. 유권자들이 재난지원금을 더 받느냐, 덜 받느냐 때문에 특정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고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몇 백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리는 수도권 접전지역 선거구에선 영향이 전혀 없었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이달 말 정부는 2024년도 국가 예산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재정지출을 올해보다 3% 정도 소폭 늘리는 긴축 재정으로 방향을 잡았다. 쌓이는 국가채무, 줄어드는 세수, 그리고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압박까지. 뭐 하나 녹록한 상황이 없지만 이럴 때일수록 관료들이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불요불급한 선심성 지출과 일회성 퍼주기 예산을 최대한 줄이고, 성장과 고용에 우선순위를 맞춘 효율적인 예산 편성을 기대해 본다. "선거에서 지더라도 재정을 지키겠다"는 대통령의 결기에 이제는 관료들이 답할 차례다.
[채수환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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