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정치 판사'
"판사는 야구 경기의 심판과 같다." 존 로버츠 미국 연방대법원장 후보자는 2005년 9월 상원 인준을 위한 인사청문회에서 법관의 역할과 사법권의 한계를 이렇게 규정했다. 그는 "심판은 볼과 스트라이크를 선언할 뿐 직접 치고 던지지 않는다"며 "심판은 규칙을 만들지 않고 적용할 뿐"이라고도 했다. 판사가 법적 증거를 토대로 사건의 진실을 판단해 판결을 내려야지, 개인 이념과 정치성향에 따라 판결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 모 판사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에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에게 검찰 구형보다 높은 징역 6월을 선고해 논란이 거세다. 게다가 박 판사는 고교·대학 시절 자신의 SNS에 노 전 대통령 탄핵과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을 비난하는 글까지 올렸다고 한다. 작년 3월 더불어민주당이 대선에서 패배한 직후에는 '이틀 정도 소주 한잔을 하고 사흘째부터는 일어나야 한다'고 적었고, 2021년 4월 민주당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뒤에는 '울긴 왜 울어,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대사가 담긴 중국 드라마 캡처 사진을 게시하기도 했다.
판사도 정치적 견해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정치성향을 SNS에 올려 외부에 노출하는 것은 사법부 불신을 초래하고 재판의 공정성을 흔드는 무책임한 행태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2012년 '법관은 SNS 이용을 비롯한 의견 표명을 절제하고 신중히 처신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법관 윤리강령에도 정치 중립을 해치는 활동을 금하고 있다. 더구나 대다수 판사들이 투명하고 공정한 재판을 위해 애쓰는 마당에 일부 판사들이 '직업적 양심'을 팽개친 채 정파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법 정의를 짓밟는 행태와 같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수진·최기상 민주당 의원처럼 '위선'의 법복을 벗고 직접 정치판에 뛰어들든지, 아니면 미국 법학자 리처드 포스너의 일갈처럼 자신의 정치성향이 재판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게 옳다. 그래야 국민도 부당한 피해를 피할 것 아닌가.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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