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어른들은 몰라요
'어른들은 자기네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해를 못한다. 늘 설명을 덧붙여 주어야 하니, 어린애들에게는 참으로 맥 빠지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여섯 살 적에 화가라는 멋진 직업을 포기해 버리고 다른 직업을 선택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고 비행기 조종하는 법을 배웠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주인공 '나'는 중절모자 같은 그림을 그려놓고 어른들에게 "무섭지 않냐?"고 묻는다. 하지만 어른들이 "모자가 뭐가 무섭냐"고 대답해 낙심을 한다. 그 그림은 코끼리를 통째로 삼키고 반년이나 잠을 자는 무서운 보아구렁이의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모든 것을 눈으로만 보고 마음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내면의 코끼리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듯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어른들이기에 보아구렁이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고 또 코끼리 그림을 그려주어야만 한다. 참으로 맥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어른들에게는 이 철부지 어린애의 당돌한 사고가 샘물 같은 웃음을 솟아나게 한다.
한동안 우리 사회도 '라떼'와 'MZ'가 화두였다.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세칭 잔소리꾼 '꼰대'를 누군가 '라떼'로 개칭하면서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처럼 '라떼'가 'MZ'를 만났다. 한동안 세대 차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새삼스러울 것 없는 우려다. 태초부터 '라떼'와 'MZ'는 부모와 자녀였고 가정이나 사회나 부대끼며 정 주고 사는 곳이 꽃자리다. '라떼'의 잔소리나 'MZ'의 참을성은 서로 깨닫고 치유할 수 있는 관계다. 문제는 철만 되면 어디든 갈라놓고 득을 보려는 부추김이다.
그런데 당돌한 우리들의 '어린 왕자' 'MZ'들이 차마, 꿈이었던 비틀스의 전설을 깨고 BTS의 K팝이 세계의 팝이라는 전설을 새로 쓰고 있다. 뉴진스, 세븐틴, 에스파, 엔시티, (여자)아이들 등이 줄을 잇고 있다. 다만, 나라를 다스리는 '어른들'의 '라떼' 정치가 본분을 저버리는 모습이 안타깝다. 물론 일부지만. 변해야 하는데 변하질 않는다. 굳세어라 금순이다. 'MZ'는 변하는데 '라떼'는 변하지 않는 것. 그것이 세대 차고 문제다.
지난 11일 세계 158개국 4만3232명의 청소년이 새만금에 모인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가 막을 내렸다. 세계의 'MZ'를 모아놓고 숨 막히는 폭염과 펄밭의 시설 미비로 아찔한 현장이었다. 그래도 위안이 있다면, 위급한 수해의 현장에서도 네 탓의 난타전을 벌였던 7월의 정치권과 달리 네 탓을 뒤로 미룬 모습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공무원은 물론, 전국 지자체 종교계 학교 경찰 군인 기업 국민들이 하나같이 협력하고 신속한 대처로 서울월드컵경기장이 떠나가는 K팝의 환호와 열광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실수는 아팠지만, 앞뒤를 가린 정치권의 모습이 모처럼 가슴에 왔다. 이제 정치도 국민을 마음으로 보고 분열 대신 화합을, 탓 대신 협력을, 싸움 대신 민생을, 말보다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지. 언제쯤일까. 그날은.
[신대남 한국대중문화예술평론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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