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증 됐어요" 이 말이 내 건강 지킨다?…'짝퉁' 호르몬 피하려면
인류 역사상 환경호르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1962년 미국의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이 발간한 저서 『침묵의 봄(Silent spring)』에서 "DDT(농약)에 노출된 새는 봄이 와도 짝짓기를 안 하고 울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보고하면서 환경호르몬의 존재가 세계적으로 부각됐다.
지금까지 발견된 환경호르몬은 그 종류만 1000개가 넘는다. 우리의 일상에 광범위하게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박정환 교수는 "환경호르몬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음식·음료를 먹을 때 입을 통해, 화장품·선크림을 바를 때 피부를 통해 우리 몸에 들어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심지어 영수증을 만질 때, 아웃도어 의류를 입을 때도 환경호르몬이 체내 침투할 수 있다.
먼지처럼 작은 입자를 통해 몸에 침입한 환경호르몬은 몸속 호르몬 수용체에 결합한다. 호르몬의 작용을 억제하거나, 호르몬이 없는데도 호르몬 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최원준 교수는 "환경호르몬 가운데 하나의 물질이 사람 몸속에서 다양한 호르몬의 수용체에 달라붙어 해당 호르몬처럼 작용할 수 있다"며 "에스트로겐 같은 성호르몬뿐 아니라 갑상샘(갑상선) 호르몬으로 행세하거나 비만 세포를 자극해 살을 더 잘 찌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유니콘 모자에 든 노닐페놀을 비롯해 비스페놀 A, 프탈레이트, 폴리염화비페닐, 폴리브롬화디페닐에테르 등이 대표적인 환경호르몬 물질로 알려졌다.
노닐페놀은 공업용 세제에 주로 사용되는 성분으로, 사람의 몸속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과 구조가 비슷해 몸에서 에스트로겐인 양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비스페놀 A는 플라스틱병, 식품 용기, 유아용 젖병, 영수증 등에 녹아 있다. 비스페놀 A도 노닐페놀처럼 몸에서 에스트로겐처럼 작용한다. 어린이의 성조숙증, 어린이와 성인의 비만, 특히 복부비만의 위험을 높인다는 보고가 있다.
프탈레이트는 폴리염화비닐이나 플라스틱을 만들 때 소재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가소제로 어린이 장난감, 화장품 용기, 의료기기 등에 사용된다. 프탈레이트는 여아의 조기 유방 발육, 소아의 성조숙증을 일으킬 수 있다. 또 프탈레이트에 과다 노출된 산모로부터 태어난 아기는 성장할 때 근육 발달이 저하된다는 보고가 있다. 성인의 경우 프탈레이트가 비만·당뇨병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폴리염화비페닐은 전기 절연체에 사용된다. 이 물질의 혈중 농도가 높을수록 혈액암인 비호지킨성 림프종(non-Hodgkin lymphoma)을 일으킬 위험을 높인다.
폴리브롬화디페닐에테르는 가구·가전·카펫 내연재로 널리 쓰인다. 불이 잘 타지 않게 해주는 고마운 물질이지만 산모가 이 물질에 다량 노출되면 무증상의 갑상샘 기능 항진증을 일으킬 위험을 높인다. 또 이 물질의 혈중 농도가 높은 여성은 낮은 여성보다 임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박 교수는 "환경호르몬은 우리 몸에서 다양한 질환을 유발할 수 있으며, 태아의 발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더 심각한 건 이런 내분비 교란 물질의 악영향이 세대를 이어서까지 나타날 수 있다는 게 동물실험을 통해 증명됐다는 점"이라고 경고했다.
일상에서 환경호르몬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선 일회용 플라스틱 컵 대신 개인 텀블러를 사용하고, 음식을 배달하거나 픽업해 집에서 먹을 때는 일회용 수저보다는 개인 수저를 사용하는 등 일회용의 플라스틱 제품을 자제하는 게 권장된다. 플라스틱 용기보다는 유리 용기에 반찬을 담아 보관하는 게 좋다. 영수증은 가능하다면 전자영수증으로 받는 게 안전하다.
평소 손을 자주 씻어 손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환경호르몬의 체내 흡수를 차단해야 한다. 최원준 교수는 "실제로 손 씻기는 감염성 질환뿐 아니라 환경호르몬 노출을 줄이는 데도 의미 있는 것으로 입증됐다"고 언급했다. 호흡기를 통한 환경호르몬 흡수를 줄이려면 실내 공기를 자주 환기한다. 집 청소도 자주 해야 한다. 최원준 교수는 "난연재(불에 천천히 타는 소재)로 만든 벽지, 커튼, 소파의 천은 화재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지만 발생한 먼지가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난연재 제품이 많다면 집 안 청소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임종철 디자인기자 shinnara@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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