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DNA’ 황당하지만…절박함에 검증되지 않은 치료로 내몰리는 장애 아동 부모들

이홍근 기자 2023. 8. 1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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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사무관 갑질’ 배경 된 사설 연구소
‘절박한’ 부모들, 황당한 진단과 처방 따라
비과학적 치료 믿지 말고 검증된 약물 써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 장애, 학부모, 교육단체 회원들이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후문 앞에서 교육부가 자폐 혐오를 방치하고, 교사와 학부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 장애인활동지원사가 햇빛을 가리기 위해 기자회견 참가자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있다. |권도현 기자

배진미씨(41)가 자폐스펙트럼장애와 ADHD 증세가 있는 아들 용준군(가명)을 민간 두뇌연구소에 데려간 것은 3년 전이었다. 당시 8살이던 용준군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거나 학교에서 친구의 몸을 밀치는 행동을 보였다. 배씨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연구소를 찾았다고 했다.

배씨가 찾은 이 연구소는 최근 ‘교육부 사무관 갑질’의 배경으로 꼽혀 논란이 된 사설 연구소다. 연구소 김모 소장은 자폐 스펙트럼과 ADHD의 원인이 ‘뇌 성향’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당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은 ‘극우뇌 성향’이며, 호전을 위해선 “왕의 DNA가 있기 때문에 왕자에게 말하듯 대해야 한다”거나 “제지하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처방했다. 병원에서 받은 약을 먹지 말라거나 동물을 괴롭혀도 제지하지 말라고 하기도 했다.

다소 황당해 보이는 진단이지만, 장애아동을 키우는 학부모들은 “절박한 마음에 믿게 된다”고 했다. 의학적으로 검증된 치료 방법이 많지 않다보니 불안한 마음에 이런 치료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배씨가 용준군을 연구소에 보낸 것도 그래서다. 배씨는 “병원에 가서 약을 먹여도 증상이 안 나아지고, 학교 선생님들한테는 맨날 ‘아이가 친구를 밀었네’ 이런 소리만 듣다 보니 불안해졌다”면서 “공교육으로 아이가 통제가 안 되고 계속 힘들어지는 상황 반복되니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배씨는 김 소장의 연구소 말고도 여러 사설 연구소와 치료소를 전전했다. 자신이 가정의학과 교수라고 주장하는 이가 운영하는 ‘호메오퍼시(동종요법)’ 치료소를 찾기도 했다. 동종요법이란, 질병 증상과 비슷한 증상을 유발해 치료하는 일종의 민간요법이다.배씨는 “일반 오피스텔에 차려진 곳이었다”면서 “500만원 넘게 비용을 지불했다”고 했다.

5세 발달장애 아동을 키우는 김숙현씨(32) 역시 한의학이 장애에 효과가 있다는 가족의 말을 듣고 한의원에 아이를 데려갔다. 김씨는 “처방받은 약은 아이가 먹을 수도 없는 약이었다”면서 “불안할 때여서 이것저것 안 해본 게 없었다”고 했다. 이어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는 상관이 없었다”면서 “20살, 30살 되었을 때 장래가 걱정되었을 뿐”이라고 했다.

배씨와 김씨 모두 이제는 이런 치료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당시로선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했다. 배씨는 “처음 (자폐) 진단을 받은 게 이대 목동병원이었는데, 의사가 ‘발달센터에 가서 치료받아야 한다’는 말 외엔 아무런 말을 안 했다”고 했다. 이어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물으니 네이버로 찾아보라는 답이 돌아왔다”면서 “막막한 마음에 인터넷을 찾다 보니 사설 연구소를 가게 된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검증되지 않는 치료법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7일 “(김 소장의 치료법이) 대표적으로 근거 없이 자기주장만 있는 치료법”이라며 “과학적 치료가 아니다”라고 했다. 김 소장은 2017년 <세계적 천재들도 너만큼 산만했단다>라는 제목의 책에서 인간 두뇌 인지유형을 좌뇌·우뇌의 비율에 따라 극우뇌인, 강우뇌인, 약우뇌인, 균형발달인, 약좌뇌인, 강좌뇌인, 극좌뇌인 등 7가지 타입으로 나눈 뒤 각 유형에 따른 교육·처방법을 내놨는데, 분류법부터 처방까지 모두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신경정신계통의 경우 미신적인 치료들이 횡행하고 있다”면서 “부정적 편견을 강화하며 근거 없는 치료를 홍보하고, 이를 통해 시장을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ADHD는 현재 나와 있는 약재의 뚜렷한 효과가 입증된 상태”라며 “약을 먹지 말라는 등의 비과학적 처방을 믿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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