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판사에 ‘편향성’ 논란까지…후폭풍 휩싸인 사법부

이혜영 기자 2023. 8. 1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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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곤 판사, 법관 임용 후에도 정치적 글 다수 올렸다가 정진석 재판 맡은 시점에 삭제
‘가카새끼’ ‘문재인 하야’ 등 논란 반복됐지만 실효성 있는 제재는 전무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8월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 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사법부가 법관 성매매에 이어 판결을 둘러싼 '정치적 편향' 논란까지 불거지며 바람 잘 날 없는 신세가 됐다. 성매매 범죄에 대해 엄벌을 강조하던 판사가 성매수 '피의자'로 전락해 몸살을 앓고 있는 와중에 정치적 판결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며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 만료로 차기 수장 인선 작업이 진행 중인 상황에 판사의 정치 성향과 그에 따른 판결 논란이 가열되면서 사법부는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모양새다.

'정진석 실형' 판사, 임용 후에도 문제적 글 썼다

판사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공방으로 확산한 것은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실형 선고가 도화선이 됐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 의원은 8월10일 1심 선고에서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검찰 구형량은 500만원이었지만, 법원은 이보다 무거운 실형을 선고했다.

판결 직후 정 의원은 강력 반발하며 항소했고, 국민의힘도 일제히 사법부를 향해 강도 높은 질타를 쏟아냈다. 정 의원과 여당은 이번 판결이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38·사법연수원 41기) 판사의 정치적 성향에 따른 결론이라고 봤다. 엄정한 법의 잣대가 아닌 판사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노골적으로 반영된 '기울어진 판결'이라는 것이다.

박 판사는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 작성한 여러 글과 게시물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뚜렷이 드러냈다. 박 판사는 2004년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자신을 헌법재판소로부터 해산 명령을 받은 통합진보당 전신인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소개했다. 그러면서 "'법조계의 적화를 꾀하라'는 지하당의 명령을 받아서 OO대학교 법과대학에 침투해 예비 법조인들의 좌경화를 선동하고 있다"는 과격한 글을 남겼다.

박 판사는 또 노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이를 주도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을 비판하며 불법 자금을 받은 의원들 사퇴가 먼저라는 주장도 했다. 여당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로 봐도 무방한 박 판사가 노 전 대통령 관련 재판을 맡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것이라고 성토한다. 

법원 ⓒ연합뉴스

박 판사의 과거 행적을 두고 여권에서 파상공세를 퍼붓자 사법부는 학창시절 작성한 글을 현재의 판결과 연결 짓는 것은 무리라며 엄호에 들어갔다. 서울중앙지법은 8월13일 "재판장에 대한 과도한 비난이 제기되는 상황에 우려를 표한다"며 이례적으로 입장문까지 냈다. 적극 엄호에 나섰던 법원 내 기류가 바뀐 것은 박 판사가 법관 임용 이후에도 SNS를 통해 반복적으로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 온 것으로 확인되면서다.

박 판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낙선한 지난해 3월 대선 직후 "울분을 터뜨리고 절망도 하고 슬퍼도 했다가 사흘째부터는 일어나야 한다"고 적었다. 민주당이 패한 2021년 4월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직후에는 "울긴 왜 울어",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대사가 적힌 중국 드라마 캡처 사진을 올렸다. 이보다 앞서 조국 전 법무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 의혹이 불거진 2019년 10월10일에는 "권력 측 발표 그대로 사실화" "약자에게만 강한 건 깡패" 등 조 전 장관에 부정적인 보도를 한 언론을 비판하는 게시물도 작성했다고 한다.

논란이 된 게시물은 현재 모두 삭제된 상태다. 정치적 성향을 드러낸 게시글이 사라진 것은 올해 3월을 전후한 시점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수원지법에서 서울중앙지법으로 이동한 박 판사가 정 의원 사건 첫 기일 즈음에 이를 모두 지운 것이다. 당초 정 의원 사건 첫 기일은 3월2일로 잡혔다가 5월로 미뤄졌다. 해당 게시물이 삭제되지 않았더라면 정 의원 측에서 법관 기피신청을 할 수 있었던 상황인데 박 판사가 이런 점을 고려해 조치를 취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여기에 박 판사가 현 재판부를 맡은 후 한국법조인대관 등재 정보에 실린 자신의 정보 삭제까지 요청했던 것으로 확인돼 파장이 더 커지는 형국이다.

대법원은 박 판사가 법관 임용 이후 올린 SNS 게시물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다. 박 판사를 상대로 논란이 된 게시글 작성 여부와 구체적 경위 등을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김명수 대법원장 ⓒ시사저널 최준필·시사저널 포토

정치적 게시물 올려도 '징계'나 '제재' 기준 없어

대법원장 교체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정치적 중립과 사법부 독립 이슈가 불거지면서 사법부는 난감한 상황이 됐다. 박 판사에 대한 처분 또는 후속 대응에도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법원 내부와 법조계 안팎에서는 징계 가능성을 두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법관 윤리강령이나 대법원 윤리위원회는 '법관의 SNS 활동이 공정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를 야기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고 권고하지만, 구체적인 제한 범위나 징계 규정은 마련돼 있지 않다. 이번에 문제가 된 글이 법관윤리강령에 따른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이 나오더라도 의미 있는 처분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의미다. 특히 박 판사가 법관 임용 이후 올린 글 다수가 '암시'나 '비유'여서서 이를 품위유지 위반으로까지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해석이 엇갈릴 소지가 있다.

사법부는 과거에도 판사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 휩싸였지만 실효적인 징계가 추진된 사례는 전무하다. 2011년 자신의 페이스북에 '꼼수면', '가카새끼 짬뽕' 등 비속어가 포함된 풍자물을 올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하한 이정렬 전 부장판사가 '법원장 서면경고'를 받은 제재가 유일하다. 2020년 김동진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 하야' 요구 글을 올렸다가 파장이 일자 삭제했는데 법원 차원의 제재는 없었다.

차기 대법원장에 대한 인선 작업이 본격화 되면서 이번 논란의 파장은 더 길어질 공산이 크다. 대법원장의 임기는 6년으로 2017년 9월25일 취임한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기는 오는 9월24일 만료된다. 대법원장 인사 청문회에서 이번 판결을 고리로 정치적 편향성이 드러난 판사에 대한 사법부의 후속 대응책 마련에 대한 압박이 가시화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판사가 정치적 기본권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것과 공정한 재판을 위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는 것은 별개 문제"라고 진단했다. 장 교수는 "사법부 코드 인사 배제를 통한 정치적 중립성 확보 방안과 이 엄격한 기준을 무너뜨렸을 때 후속 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 또 정치적 판결을 일삼은 판사들이 법복을 벗고 바로 정치에 투신하는 것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지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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