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카의 빅엿" "문재인 하야"…불붙은 '법관 SNS' 어디까지 허용?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에게 실형을 선고한 판사가 과거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정치적 의견이 담긴 게시물을 올렸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법관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논란이 일고 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정 의원에게 최근 실형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가 재직 중 정치적 견해가 담긴 SNS 글을 올린 의혹과 관련한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다.
이번 논란은 박 판사가 지난 10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정 의원에게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시작됐다. 여당 중진의원에게 검찰 구형량인 벌금 500만원을 한참 웃도는 징역형의 실형이 선고되자 여권을 중심으로 판사의 정치 성향이 선고에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박 판사가 과거 SNS에 작성한 글이 문제가 됐다. 법관으로 임용된 뒤에도 정치 성향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의 글을 SNS에 여러 차례 올린 사실이 드러났다. 박 판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낙선한 지난해 3월 대선 직후 "울분을 터뜨리고 절망도 하고 슬퍼도 했다가 사흘째부터는 일어나야 한다"고 적었다.
법관의 SNS상 정치적 발언이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동진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는 2020년 자신의 SNS에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됐고 서기호 전 판사는 2011년 "분식집에서 쫄면 시켰다가 가카의 빅엿을 먹게 된다"며 이명박 대통령을 조롱하는 글을 올렸다.
법관윤리강령 7조는 법관이 직무 수행 과정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도 법관의 SNS 사용과 관련해 "공정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를 야기할 수 있는 외관을 만들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고 2012년 권고했다. 다만 법관윤리강령이나 대법원 권고를 어기더라도 벌칙이나 제재는 따로 없다.
판사들 사이에서는 SNS에서 정치 성향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지방법원의 판사는 "SNS는 개인적인 사진을 올리는 정도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판사가 재판할 때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는데 무제한적으로 SNS 사용을 허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도 "SNS에 사생활 관련 게시물만 올려도 추후에 관련 판결을 하게 되면 공정성이 떨어진다고 공격받을 빌미가 될 수 있다"며 "판사의 일은 개인적인 일이 될 수 없다. 판사 개인이 SNS에 올리는 것은 무엇이든 법원의 입장처럼 비칠 수 있다"고 했다.
한편으로 SNS 활용이 늘어나는 것이 시대적인 흐름이고 판사도 표현의 자유를 가진 국민이라는 점에서 법원이 사용 제한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수도권 지방법원 한 판사는 "SNS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세대가 법원에도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이들의 성향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개인의 SNS 사용을 기관인 법원이 강제적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법관의 경우 공개적인 정치적 발언은 지양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다만 법관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재판 결과에 과도하게 연결 짓는 일 또한 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이 판사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있고 판사의 정치적 중립은 중요한 윤리이자 원칙"이라며 "법관처럼 정치적 중립이 생명인 공직자는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법부가 이번 일을 계기로 자기 통제의 기회로 삼고 국민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모든 개인은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출판, 사상의 자유가 있다는 점에서 법관도 예외는 아니다"며 "사적 공간에서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공적인 공간에서 발언할 때는 조심스럽게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다만 설 교수는 "정치색을 드러냈다고 해서 법관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판결을 한다는 것은 위험한 전제"라며 "각 정당에 판사 출신 정치인이 많은데 그렇다면 이들이 법원에 있을 때 치우친 판단을 내렸다는 해석도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김지성 기자 sorry@mt.co.kr 박다영 기자 allzer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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