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한 듯이 끌어들인 주변 자연의 ‘장대한 전망’ 일품

서울앤 2023. 8. 1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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㉒ ‘가쓰라리큐와 함께 교토 왕실정원의 쌍벽’인 슈가쿠인리큐 정원 관람기

[서울&] [교토, 걸으며 생각하며]

슈가쿠인리큐 정원의 절정을 이루는 요쿠류치 연못. 연못 수면보다 약 13m 높은 다실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인데, 차경을 이루는 주변 자연과 더불어 장대한 자연미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17세기에 퇴위한 왕이 직접 지은 별장

주변 경관 활용 ‘일본 차경 정원’ 대표작

17만 평 대지에 상중하 3동의 정원 조성

“정원 안에 산과 논밭 등”…스케일 압도적

40m 고도차 활용 ‘다이내믹 구성’ 볼만

맨 위 다실에서 내려다보는 전망 압권

인공 첨경물도 자연의 일부처럼 보여

기억에 오래 남을 “두루마리 산수화”

교토 시내에 있는 데마치야나기(出町柳)역에서 히에이잔전철을 타고 북쪽으로 네 번째 정거장인 슈가쿠인역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1659년께 지어진 왕실별장 슈가쿠인리큐(修學院離宮)에 다다른다. 일본 정원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명원이다.

슈가쿠인리큐는 가쓰라리큐(桂離宮, 연재 9회 참조)와 더불어 일본 궁정정원의 쌍벽을 이룬다. 가쓰라리큐가 고도의 심미안을 바탕으로 한 슈쿠케(縮景·축경, 자연경관을 본떠 정원 안에 꾸민 풍경)로 인공미의 한 정점을 이뤘다면, 슈가쿠인리큐는 드넓은 공간에 주위 경관을 끌어넣은 샷케(借景·차경, 주변 경치를 정원의 일부처럼 활용하는 일)의 수법으로 장대한 자연미를 연출한다. 어느 한쪽을 감상한 사람이라면 나머지 한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슈가쿠인리큐는 가쓰라리큐의 약 8배에 해당하는 16만 5천평의 광대한 부지에 세 개의 별궁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최고 40m의 고저차 속에 상중하로 배치돼 있다. 전체 정원의 입구에 해당하는 낮은 쪽부터 보통 시모(下)리큐, 나카(中)리큐, 가미(上)리큐로 구분해 부른다. 별궁 사이는 다락논밭(세 별궁을 하나로 관리하기 위해 근대에 들어 일본 정부가 사들였다)이고 그 사이로 각 별장을 연결하는 소나무 길을 조성했다. 두렁길 양쪽에 소나무를 심어 오가는 가마나 마차가 농민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했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별장을 구경하며 정원 속의 차경을 감상하는 코스가 돼 있다.

슈가쿠인리큐는 교토 동북쪽 히에이잔산 아래 있는데, 교토 어소(왕궁)를 중심으로 서남쪽의 가쓰라리큐와 정확하게 일직선을 이룬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둘은 이 대칭구도만큼이나 대조적인 미학을 갖고 있다. 슈가쿠인리큐가 30년 정도 먼저 지어진 가쓰라리큐를 의식하며 지어졌기 때문이다.

왕후의 숙소로 쓰인 라쿠시켄 다옥은 노인 여성의 동선을 배려해 집을 낮춰 지었다. 마루-섬돌-연못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우선 입지부터 다르다. 가쓰라리큐가 달을 바라보기 좋게 강변의 평지에 기러기가 내려앉은 듯 자리하고 있다면, 슈가쿠인리큐는 달빛을 좇아 산기슭을 날 듯이 경사면에 걸쳐 있다. 지표의 고저차를 교묘하게 이용해 주변 자연을 마치 조경한 듯이 정원 안에 끌어넣었다. 가장 아래쪽인 시모리큐를 지나면 돌연 산봉우리가 나타나고, 맨 꼭대기 가미리큐에 올라서면 멀리 교토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전체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각 건물과 딸림정원, 소나무길, 뱃놀이도 가능한 큰 연못마저 인위적인 첨경물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연 속에 녹아들어 있다. 가쓰라리큐에서는 인공이 자연과 대등하다면, 슈가쿠인리큐에서는 어떤 교묘한 인위도 “부처님 손바닥 안”이란 듯 대자연의 섭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슈가쿠인리큐는 원래 가미리큐와 시모리큐 2동만이었고 중간의 나카리큐는 왕녀가 지내던 비구니 사찰(지금도 린큐지란 절이 있다)이었는데, 1884년 건물과 땅을 헌납하면서 정원의 일부가 됐다. 정원 구경은 단체관람으로 진행된다. 안내원을 따라 시모리큐에서 함께 출발해 나카리큐를 거쳐 가미리큐로 올라간 뒤 연못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시모리큐로 돌아오는 경로이다.

손님들이 머물던 갸쿠덴의 내부 모습. 다다미방의 벽과 장지문에는 유명 화가들의 그림으로 가득하다.

시모리큐는 전체 정원의 입구와 접대실 격이다. 약 1300평의 넓은 대지였으나 건물은 1820년 재건된 주게쓰칸(壽月觀)만 남아 있다. 안으로 들어서는 수로가에는 ‘조선식’ 등 개성적인 조형미를 뽐내는 석등이 줄지어 배치돼 있고 , 세 칸짜리 오차야(御茶屋)에 이 별장을 지은 고미즈노오 덴노(왕)의 친필 편액이 걸려 있다. 방에 그려진 그림들은 모두 당대 저명한 화가들의 작품이다. 시모리큐 뒷문을 나오면 시야가 확 트이면서 정원 전체를 감싸 안은 히가시야마산 연봉이 보는 이를 놀라게 한다. 고미즈노오는 막부의 압력에 눌려 지내다 저항하듯 왕위를 내던진 사람인데, 정원에 자신의 황토(皇土)를 들여놓은 듯한 이 차경 방식은 ‘그래도 왕은 나다’라는 상처받은 제왕 의식을 신음하듯 표출하는 것 같다.

자연경관을 감상하며 소나무길을 걸어 오른쪽으로 가면 나카리큐가 나온다. 나카리큐는 왕후가 머무는 라쿠시켄(樂只軒)과 손님방인 갸쿠덴(客殿)으로 이뤄져 있다. 라쿠시켄은 건물을 지면에 가깝게 낮춰 마루-섬돌-앞뜰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나이 든 주인 여성의 동선을 염두에 둔 설계라고 한다. 다다미방에는 산벚나무와 강변의 단풍이 그려져 있는데 모두 가노 단신이라는 화가의 작품이다. 가노(狩野)파는 400년간 일본 화단을 주름잡은 큰 화파이다.

일본인들이 일본 3대 선반으로 자랑하는 ‘가스미다나’ 선반. 조형미가 빼어나다.

갸쿠덴은 슈가쿠인리큐에서 실내 의장(意匠)으로는 가장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세 칸의 두 번째 방에는 일본의 3대 선반 중 하나라는 가스미다나(霞棚)가 있다. 각종 화려한 무늬와 그림, 장식품은 주인 여성의 섬세한 미적 감각을 느끼게 한다. 금구장식에 새겨진 접시꽃 문양은 주인이 도쿠가와 막부에서 왕실로 시집온 딸임을 과시하는 후광 같은 것이다. 삼나무 벽장문에 그려진 야마보코(교토의 여름축제인 기온마쓰리에 등장하는 가마) 그림은, 어느덧 왕실에까지 발길이 미친 마치슈(町衆, 교토의 부유한 중간계급. 주로 상공업자들이다)의 성장을 묵시하는 듯하다.

슈가쿠인리큐의 정상에 자리잡은 가미리큐는 이 정원의 절정이다. 급경사의 돌계단을 오르면 시야 아래로 감춰놓은 듯 커다란 연못이 짠 하고 나타난다. 정원 꼭대기에 세운 린운테이(臨雲亭) 다실에서 내려다보는 연못은 용이 헤엄치는 모습이라고 해서 요쿠류치(浴龍池)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용머리 섬과 해안을 묘사한 정선(汀線), 수십 종의 꽃과 나무 숲 위로 한가로이 노니는 학, 그 뒤로 펼쳐지는 장대한 산줄기와 푸른 하늘의 떠가는 구름, 그 한편에 꼽사리 낀 듯이 자리한 인간의 도시…. “맙소사, 세상 경치가 여기에 다 모여 있구나!”라는 찬탄과 함께 그만 말을 잃고 만다.

정원 입구에 배치된 석등 중 하나. 지금 봐도 모던한 스타일이 눈길을 끈다.

린운테이를 내려와 단풍이 아름다운 가에데바시 다리를 건너면 연못 안의 나카지마 섬 위에 세운 규스이테이(窮邃亭)가 나온다. 별장 주인인 왕의 다실이다. 규스이테이에서 바라보는 서쪽 연못가인 니시하마(西浜)가 또 시선을 빼앗는다. 연못에 비친 하늘은 보는 이의 마음을 바다 저편에 있다는 신선의 땅으로 데려가준다. 흙다리를 건너 니시하마 쪽으로 내려오면, 지금까지 지나온 풍경이 복습하듯 반대 시점으로 재현되면서 오랫동안 추억으로 각인될 두루마리 산수화가 완성된다.

연못을 한 바퀴 돌아 가미리큐 입구로 돌아오면 정원 구경은 끝난다.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자기 나름으로 통찰한 작정자의 의도가 뚜렷하게 느껴진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다. 가미리큐에서 내려오는 길 오른쪽에는 ‘오카리코미 제방’이라고 부르는 잘 손질된 상록수 담이 있다. 이 제방은 계곡물을 막아 연못을 만들기 위해 쌓은 ‘인공댐’이지만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존재조차 의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주변 자연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정원의 비의(秘義)는 어쩌면 이 제방에 숨어 있을 것이다. 그 자체로 둑이거나 그 너머에 호수가 있다는 것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의 일부가 되도록 한 그 작의(作意)가 이 거대한 자연풍경식 정원의 전체 미학을 떠받치고 있다.

슈가쿠인리큐는 34살에 퇴위한 고미즈노오(1596~1680)가 환갑 무렵 짓기 시작해 64살 때 완성했다. 고미즈노오는 그 자신이 뛰어난 작정가였다. 별장의 위치 선정은 물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까지 직접 계획하고 현장지도까지 했다. 그는 이후 20년간 왕궁과 슈가쿠인리큐를 오가며 살다가 84살에 죽었다. 왕좌를 내던진 대가로 얻은 ‘초일류 문화인의 일생’이었다고 한다.

이 왕실정원도 가쓰라리큐처럼 사전예약제이다. 당일 현장접수도 가능하지만 인원 제한에 걸릴 수 있으니 안심하지 마시기를.

글·사진 이인우 리쓰메이칸대학 ‘시라카와 시즈카 기념 동양문자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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