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4. 파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경기일보 2023. 8. 1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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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출판도시에 위치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예술>을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뮤지엄 전경. 윤원규기자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색 건물이 보인다. 직사각형의 평범한 건물인 듯 보였으나 정원 안으로 들어서니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파주 출판도시에서 만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관장 홍지웅·홍예빈)은 천의 얼굴을 가졌다. 미술관 정원에서 만난 한국 특산종인 보라색 벌개미취 꽃밭도 뜻밖의 기쁨이다. 미술관의 이름인 ‘미메시스’는 출판사 ‘열린책들’의 자회사인 예술 전문 출판사의 상호이기도 하다. 바깥의 직선과 안쪽의 부드러운 곡선이 어우러진 미술관 외관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설립자인 홍지웅 관장은 ‘출판사를 만들다 열린책들을 만들다’라는 책에서 “독창성을 가장 중시한다”며 이런 단서를 붙였다. “새롭되 그것대로 완벽한 조형미를 갖추고 있어야 마땅하다.”

'MIMESIS SE 17 Border of Skin' 김찬송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1층 전시장. 윤원규기자

■ 건축의 시인, 안과 밖 경계를 허물다

2009년에 완공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건축의 시인’이라 불리는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루 시자가 설계한 것이다. 알바루 시자는 ‘모더니즘 건축의 마지막 거장’이라고 불리는 포르투갈의 건축가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1992)을 비롯해 울프 예술상(2001),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두 차례(2002, 2012)나 수상한 현대 건축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외부는 두 개의 날개처럼 양쪽으로 펼쳐져 있다. 두 공간이 나비의 날개처럼 연결돼 있는 구조가 독특하다. 건축가는 물론 미술 작가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미술관의 자랑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신선하고 흥미롭다는 것. 미술관 카페로 사용되고 있는 로비와 책방 겸 안내소를 지나 전시실로 이어지는 부분은 건물의 양 날개가 만나는 중심부에 자리하는데, 곡면의 큰 창을 통해 잔디와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정원의 풍경이 가득 들어온다. 미술관 두 공간이 만나는 모서리에 창문을 둬 무게감을 덜어낸 것도 참신하다.

'MIMESIS SE 17 Border of Skin' 김찬송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1층 전시장. 윤원규기자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는 9월 24일까지 김찬송 작가의 개인전 ‘Border of Skin피부의 경계’가 진행된다. 김찬송 작가의 작품은 부드럽고 육감적이다. 손과 발을 포함한 여성의 몸과 푸른 식물이 관람객에게 부드러운 말을 건넨다. 부드럽게 굽은 하얀 벽면에 춤추듯 아래위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나뭇가지를 만지거나 머리칼을 감싸고 있는 여인의 손, 공을 딛고 선 날씬한 발, 웅크려 앉은 여인의 풍만한 몸은 멀리서 보면 경계가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경계가 허물어지며 모호해진다. 작가는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작가는 우연히 찍힌 자신의 몸을 보고 영감을 얻어 작품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작가는 자신의 몸과 그 바깥의 사물, 그리고 그들 사이의 경계와 흔적을 표현합니다. 사진을 캔버스 위에 옮긴 후 회화 작업을 통해 형태를 쌓고 무너뜨리며 장면을 만들어 간다고 하는데 화면 속에 불완전한 부분을 남겨둬 시선이 계속 스며들고 파고 들 수 있는 틈을 열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어요.” 이 전시를 기획한 정희라 선임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며 작가의 손을 상상해본다.

흥미로운 장면이 또 눈에 들어온다. 푸른 나무와 풀들이 있는 그림이 걸려 있는 맞은편에 난 창 너머로 미술관 정원의 잔디가 펼쳐진 풍경이 그것이다. “우리 미술관의 가장 큰 자랑은 자연 채광이 가능하도록 디자인 됐다는 점입니다.” 천장과 벽을 올려 봐도 인공조명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다. 2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알바루 시자의 설계가 얼마나 작가와 관람객을 배려하고 있는지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철저하게 작가와 작품을 드러내도록 배려한 것이 알바루 시자의 건축 특징입니다. 벽을 보시면 면이 없이 곡선으로 연결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장을 보시면 자연광이 작품을 비추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건축가 알바루 시자를 소개하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마침 젊은 여성 두 명이 미술관 모형과 스케치가 부착된 공간에서 사진을 찍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흥미롭고 놀라운 공간을 만들어낸 시자를 꿈꾸는 건축학도들로 짐작된다. 건축가들이 많이 찾아오는 까닭을 알 것 같다.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루 시자'가 설계한 뮤지엄은 모더니즘 건축 자체로 전시 이상의 볼거리를 선사한다. 윤원규기자

■ 시간과 계절에 따라 펼쳐지는 빛의 축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대지 4천620㎡에 지상 3층, 지하 1층으로 이루어진 연면적 3천300㎡나 되는 대형 미술관이다. 다양한 크기의 여러 개의 전시 공간이 하나의 덩어리에 담겨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방식이 재미있다. “다양한 곡면으로 이루어진 순 백색의 전시 공간은 자연광을 끌어 들여 은은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낮 12시, 오후 3시나 5시 빛이 다 달라요. 물론 계절에 따라 또 달라집니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빛의 향연을 볼 수 있는 것이 아주 매력적이죠. 그래서 아직 와 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찾은 사람은 없다고 해요.” 건축이 전시 이상의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니 더욱 유심히 공간을 살피게 된다. “개관하기 전부터 해외의 다양한 매체에 소개됐다고 해요. 국내외 건축가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고 있다고 해요.” 이러한 강점을 가진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중견 작가를 지원하는 사업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예술’을 소개하는 역할에 누구보다 열심이다.

3층 전시장에서는 '2023 MIMESIS COLLECTION: 창문 너머 산책자' 전시가 열리고 있다. 윤원규기자

오는 9월 24일까지 진행되는 ‘2023 MIMESIS COLLECTION: 창문 너머 산책자’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들로 충만한 전시이다. 이 전시를 기획한 이소영, 최연 코디네이트의 ‘빛을 끌어들이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건축 구조는 건물의 ‘창窓’을 통해 완성’된다는 해석에 귀를 기울인다.

“전시는 미술관의 창문 또한 미술관의 컬렉션으로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를 바탕으로 미술관의 소장품을 재해석해 건축과 미술 작품의 해석이 교차하는 지점을 찾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창문의 역할은 무엇이며 산책자는 또 누구일까? “창문은 투명한 유리를 통해 외부를 바라볼 수 있고 그 너머의 공간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줍니다. 건물의 안과 밖을 구분해주는 벽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틀 안에 프레이밍 된 풍경만을 보여주기도 하지요. 창문의 모순적인 기능과 성격은 건축 공간 안에서 작동하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의 안과 밖을 은유하는 개념으로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전시는 ‘창 넘어가기’와 ‘창으로 바라보기’로 구성됐다. “건축물의 창은 공간이나 관념의 세계를 넘나들게 만들고 단절된 세계와 견고한 사회의 구조를 마주하게 하기도 합니다. 전시장에서 만나는 작품이라는 창을 통해 그 너머의 세계로 넘어갈지, 그 자리에 서서 관찰자가 될지 고민하게 됩니다.” 해설을 들으며 작가들의 상상력이 펼쳐진 작품을 살펴본다. ‘창문 너머 산책자’는 이혜승, 정직성, 박석민, 김효숙, 권영성, 황원혜, 윤새롬, 김태호, 이세현, 우정수, 박기일, 송수민, 이슬기, 이지영 14인의 젊은 작가들의 다양하고 매력적인 작품을 한 자리에 선보인다. 밀리언셀러인 ‘그리스인 조르바’의 표지화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도 만날 수 있다.

로비에서 커피와 함께 파주 출판단지에서 생산된 다양한 책을 구매할 수 있다. 윤원규기자

■ 찾고 즐기는 관람객들이 주인이다

1층 카페의 통유리로 들어오는 빛과 2층 발코니 창에서 들어오는 빛이 1층 로비로 퍼지고 맞은 편 벽면에 반사돼 순백색의 곡면에 물결처럼 퍼진다. 넓고 아늑한 공간에서 차를 마시고 책을 펼치는 사람들의 몸짓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창을 통해 들어온 은은한 빛이 사람들의 어깨로 퍼져나간다. 미술관을 나서면서 미메시스 아트 뮤지움을 설립한 홍지웅 관장의 발언을 음미해 본다. “내가 느낀 것은 건축물은 지어지는 순간부터 이미 건축주의 것도, 건축가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떤 장소에 지어지든 한 건축물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는 그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것이라는 얘기다.” 파주 출판도시 곳곳에 미술관과 박물관이 보석처럼 자리 잡고 있다. 출판도시를 찾아가면 햇살처럼 온몸으로 번져가는 기쁨을 맛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속도와 경쟁에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푸른 숲이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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