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부자의 손자가 납치되면 몸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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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기네스북은 미국의 석유왕 J. 폴 게티(1892~1976)를 세계 최고 부자로 선정합니다. 게티는 2차 대전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개발권을 따내 거대한 부를 일군 사나이였습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올 더 머니’(All the Money in the World, 2017)는 게티(배우 크리스토퍼 플러머)의 돈에 얽힌 독특하고 기이한 생각과 행동을 재현한 영화입니다. 1973년 게티의 손자가 유괴당한 실제 사건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전개합니다.
게티의 손자를 납치한 범인들은 아이 엄마인 게일 해리스(미셸 윌리엄스)에게 몸값 1700만달러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게일에게는 돈이 없습니다. 마약에 빠진 남편과 이혼하면서 아이 양육권을 얻는 대신 재산 분할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납치범들은 “할아버지에게 받아 오라”고 지시하고 기대에 부풉니다.
하지만 게티의 공개 반응은 한 푼도 주지 않겠다는 폭탄 선언이었습니다. 그는 “손자가 열넷이다. 몸값으로 1페니라도 냈다가는 14명 모두 납치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테러리스트가 협박할 때 정부가 응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하지만 물밑에서 게티는 은밀하게 자신의 심복인 전직 CIA 요원을 통해 손자의 몸값을 220만달러로 대폭 낮춥니다. 심지어 몸값에 대해 소득 공제를 받을 수 있는 조치를 취했고, 돈을 대는 대가로 게일에게 양육권을 포기하라고 종용했습니다. 게일은 이런 게티의 모습에 질리지만, 이것 또한 ‘돈을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게티의 원칙입니다.
유괴 사건이 있기 전에 게티가 어린 손자에게 그리스에서 골동품을 샀던 경험을 이야기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실제 100만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었지만 어리숙한 판매자가 진가를 모르고 19달러에 팔겠다고 했습니다. 게티는 한 시간 이상 흥정해서 11달러 23센트에 샀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합니다. “모든 것에는 가격이 있다.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싸움은 그 값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실제 삶에서 게티는 특이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섯 번 이혼했고 유럽 귀족 가문의 여자들을 애인으로 둔 것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방이 72개나 되는 호화 저택에 살면서도 집에 공중전화를 설치해, 방문한 가족들이 동전을 넣고 통화를 하게 했습니다.
게티의 자손 대부분은 자살이나 마약중독으로 점철된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유괴됐다가 풀려난 손자도 결국 마약 과용으로 사망했습니다. 게티는 후계자를 키우지 않았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회사 ‘게티 오일 컴퍼니’는 그의 사후에 매각돼 사라졌습니다.
게티는 환생을 믿었습니다. 전생에 예술을 사랑했던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였다면서 황제의 저택을 캘리포니아에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그리고 전 재산을 바쳐 평생 수집한 미술품을 모아 이곳에 ‘게티 뮤지엄’을 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천재 사업가의 이름은 회사가 아닌 미술관을 통해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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