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대응팀’ 맡게 된 교육공무직들 부글부글···“우리도 악성 민원 피해자”
61.4% “이미 악성민원 고충 겪어”
교육공무직 보호 법·제도 미비해
교무실무사 A씨는 최근 한 학부모에게 교실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 항의 전화를 받았다. 사건 내용을 모르는 A씨는 담임교사나 관리자와 통화하라고 학부모에게 권했다. 학부모는 “어차피 소용없으니 바꾸지 말라”며 화난 목소리로 “어떻게 생각하냐”고만 물었다. 이후 이 학부모는 학교로 A씨를 찾아와 가위를 들이밀며 웃음기 섞인 얼굴로 “어때요, 무섭죠”라고 말했다. 이어 “이게 우리 아이가 당한 일”이라며 항의를 이어갔다.
교무실무사 B씨는 학기 초에 “아이가 방과후교실로 가는 길에 헤맬 수 있으니 담임교사가 인솔해 줬으면 한다”는 민원 전화를 받았다. B씨는 “3월에는 지도하겠지만, 한 달 후에는 금방 적응해 혼자서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 학부모는 “애는 낳고 길러보고서 그런 소리를 하냐”고 화를 냈다.
17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악성 민원 피해사례를 공개했다. 교육공무직은 공립 교육기관에서 근무하는 이들 가운데 공무원이 아닌 교무실무사, 행정실무사, 특수교육지도사, 돌봄전담사, 사서 등을 일컫는다.
앞서 정부는 지난 14일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 방안’ 시안을 발표했다. 이 중 핵심은 학교의 민원 창구를 ‘민원대응팀’으로 일원화하는 것이다. 민원대응팀은 교감과 행정실장, 교육공무직 등 5명 내외로 꾸려진다.
정부 방안을 보면 앞으로 초기 민원 대응은 교육공무직들이 담당해야 한다. 김한올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정책국장은 “교감과 행정실장은 사실상 관리직에 해당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교육공무직에 업무가 하향식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육공무직들은 이미 악성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가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조합원 4687명에게 실시한 악성 민원 피해실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1.4%(2878명)가 악성 민원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악성민원 유형은 학생지도 관련이 63.5%로 가장 많았으며, 행정 사무 관련이 15.2%, 시설 관리 관련이 4.8% 등이었다. 이에 따라 응답자의 91.3%(4279명)는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고 응답했다.
이들이 학교 내 공식 민원 창구인 민원대응팀 소속이 되면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김지영 경기지역 돌봄전담사는 “이미 본인이 원하는 내용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계속 상담과 민원을 신청하는 상황에 대처 방안이 없어 힘겨운데, 교육공무직이 민원을 다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교육공무직을 악성 민원에서 보호할 대책은 딱히 없다. 20년 넘게 학교 교무실무사로 일하고 있는 C씨는 10여년 전 “제증명을 원하는 방식대로 발급해 주지 않았다”는 민원을 받았다. 해당 민원인은 형사 소송 35건과 민사 소송 4건을 제기했다. 민원인은 무고로 실형을 받은 뒤에도 각종 민원 사례를 발굴해 C씨를 괴롭히고 있다. C씨는 “악성 민원 피해는 오롯이 개인이 감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대책을 요구했다.
민원대응팀이 악성 민원에서 교사를 보호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공무직이 생활지도, 교우관계 등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한올 정책국장은 “시스템으로 거르지 않은 모든 민원의 1차 대상은 교육공무직이 될 것이며, 직무와 무관한 ‘감정쓰레기통’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항의성 민원은 될 수 있는 대로 학교 이전에 교육청, 교육지원청 등 상급기관에서부터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education/article/202308141633001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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