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돌 연애 반대”...포르셰까지 동원한 열성 팬덤에 기획사 ‘진땀’
메이크업·안무 수정부터 사생활 관련 항의 목적도
아이돌 동경하던 팬들, 이제는 직접 양육
“정당한 목소리” vs “일종의 소비자 갑질”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 일대에서 전광판을 단 트럭 뒤를 고급 외제차 포르셰 3대가 나란히 따라다니는 모습이 목격됐다. 전광판엔 유명 아이돌그룹 세븐틴의 멤버 조슈아를 비난하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그가 팬을 기만했으니 사과하고 그룹을 탈퇴하라는 내용이다.
포르셰를 동원한 트럭 시위를 준비한 이들은 자신들을 ‘250만장 앨범 판매량 제공자’라고 소개했는데 중국 국적의 세븐틴 팬들로 알려졌다. 소셜미디어(SNS)에서 멤버 조슈아와 한 유명인의 열애설이 확산되자 “아이돌 활동은 등한시한 채 팬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 방송에서 연애하는 티를 내는 등 팬을 기만했다”며 트럭 시위를 기획했다.
아이돌 팬덤의 트럭 시위가 소속사를 흔들고 있다. 2017년 무렵 시작된 트럭 시위는 처음엔 주로 소속사의 부족한 연예인 지원을 비판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의도였지만 이제는 안무와 메이크업을 바꾸라, 개인 스케쥴을 막지 말라고 하는 등 요구하는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소속사가 아닌 팬덤이 아이돌을 키우는 이른바 ‘양육 시스템’의 부작용이란 분석이 나온다.
◇ “춤 바꿔라”, “개인 활동 시켜라” 트럭 시위 전선 확대
지난 5월 샤이니 팬덤은 SM엔터테인먼트 앞에서 샤이니 데뷔 15주년 기념 팬미팅 대관 장소를 변경하라며 트럭 시위를 진행했다. 팬미팅을 개최하기로 한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은 단차가 없어 5000명이 수용되면 맨 뒤 좌석에서는 무대를 거의 볼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같은 달 2020년 데뷔한 신인 아이돌 엔하이픈 팬덤은 신곡에서 여성 댄서와 함께하는 안무를 바꾸라는 취지로 트럭 시위를 했다. 르세라핌의 사쿠라 팬덤은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3일까지 하이브 사옥 앞에서 ‘사쿠라의 개인 스케줄 제한 금지’, ‘스타일링 개선하라’와 같은 내용들로 트럭 시위를 진행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트럭 시위가 활발해진 데 대해 “시위에 트럭을 동원할 수 있을 정도로 옛날에 비해 팬들이 아이돌에 돈을 쓰는 규모가 커졌을 뿐 아니라 아이돌이 발굴될 때부터 함께해 아이돌이 성장하는 데 들이는 노력도 많아졌다”면서 “아티스트라는 결과물에 대해 팬들의 지분이 크다고 생각하니까 더 사소한 부분까지 적극적인 요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전광판이 달린 트럭 대여료는 운전기사 인건비를 포함해 하루 60~7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일주일 기준 420~490만원에 달한다.
◇ 아이돌 ‘숭배’ 넘어 ‘양육’하는 팬덤... 소속사는 사생활 노출 시키며 상품화
아이돌 팬덤이 트럭 시위 등을 통해 아티스트의 무대 위는 물론 사생활까지 전방위적으로 관여하려는 것은 엔터업계에서 팬들의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커진 것과 관계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엔터사들은 대중과 마니아층(팬)의 수요를 아우를 수 있는 콘셉트의 아이돌 그룹을 기획했지만 이제는 워낙 많은 아이돌 그룹이 쏟아져나온 탓에 타깃층을 세분화하기 시작했다. 대중에게 멀어지더라도 특정 콘셉트를 좋아하는 팬덤을 확실히 사로잡는 길을 택한 것이다.
팬들은 아이돌을 멀리서 지켜보며 동경하는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키워내는 양육자로 위치를 바꿔갔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키우기 위해 듣지 않을 음반을 구매하고 자발적으로 유튜브 동영상 등 콘텐츠를 만들어 확산시키는 행위 등이 대표적이다. 작년 유안타증권은 엔터업 분석 리포트에서 충성도가 높은 아이돌 팬들을 ‘무보수 크리에이터’로 규정했다. 요즘 팬들은 엔터사가 제공하는 1차 콘텐츠 외에도 2차, 3차 콘텐츠를 자발적으로 만들어 냄으로써 ①팬덤 소속감, 결속력 형성, ②기존 팬덤 유출 방지 효과, ③신규 팬덤 유입 효과, ④IP에 대한 몰입도 증가의 효과를 창출한다.
이렇듯 팬들이 아이돌에게 지출하는 돈과 시간이 증가하며 이를 일종의 ‘투자’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늘었다. 자신이 아이돌에게 투입한 돈과 시간을 ‘투자’로, 아이돌의 활동을 ‘투자 성과’로 판단하는 것이다. 본인이 지출하고 투자한 만큼 아이돌이 열심히 활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배신감을 느껴 항의성 글을 SNS 등에 남기거나 시위를 하며 등을 돌린다.
동시에 엔터사는 더 많은 충성 팬을 확보하기 위해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라이브 방송 등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게 만드는데 결과적으로 팬들이 무대 위뿐 아니라 밖도 아이돌 그룹의 활동 영역이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늘어나는 팬덤의 트럭 시위에 대해 전문가들은 팬들의 정당한 요구라는 의견과 자칫 갑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함께 드러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트럭 시위는 소비자들이 정당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해서 막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K-POP 산업에 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잘못된 점이 있으면 지적하고 같이 성장해 나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황 대중문화평론가는 “옛날에 비해 요즘 팬들은 본인들의 니즈를 충족시킬 것에 대한 요구가 강해졌다”면서 “아이돌이든 소속사든 가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바로 공격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교육계·병원 등을 포함해 돈을 내는 소비자가 갑이라는 문화가 사회 전반에 널리 퍼진 것 같다”며 “팬도 힘의 원천이 구매력이다 보니 금전적으로 아이돌을 후원해왔다는 생각에 거리낌없이 요구하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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