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챙기고 지갑도 채우는 ‘마일리지’
[서울&] [자치소식]
도봉구 창동에 사는 회사원 고인실(37)씨는 아침엔 따릉이를 타고 지하철역까지 가고, 낮엔 텀블러에 커피를 마시고, 저녁 퇴근길 슈퍼에 갈 때는 장바구니를 쓴다. 지난 4월부터 거의 매일 챙겨 하는 일이다. 고씨는 하루 네댓 가지의 탄소 줄이기 실천 활동을 하고 틈날 때 사진을 찍어 도봉구 탄소공감 마일리지 앱에 올린다. 4살짜리 아이 엄마인 고씨는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작은 실천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꾸준히 하고 있다”고 했다.
고씨는 얼마 전 탄소공감 마일리지를 도봉사랑상품권 3만원으로 바꿨다. 4개월 동안 360여 회 탄소 줄이기 실천 활동으로 쌓은 마일리지가 6월에 ‘3만’을 넘겼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생활 속에서 탄소 줄이는 실천을 하며 마일리지 쌓는 재미도 쏠쏠하다”며 “활용도가 높은 지역화폐를 줘 가계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탄소공(Zero)감(減) 마일리지’는 기후위기 대응 구민 실천 촉진을 위한 도봉형 환경 마일리지다. 도봉구는 지난해 관련 인터넷 웹과 모바일 앱을 개발해, 올해 시범 기간을 거쳐 4월부터 정식 운영에 나섰다. 회원가입 뒤 구민 인증을 받은 참여자가 일상생활에서 41가지 탄소 줄이기 활동을 실천하고 도봉사랑상품권을 인센티브로 받는다. 이종형 도봉구 기후환경과장은 “환경 마일리지에 지역화폐를 연계한 시도는 우리가 전국에서 처음이다”라며 “많은 주민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실천 도구이면서 지역경제에도 도움을 주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좋다. 구는 연말까지 5천 명 일반회원 가입을 목표로 삼았는데, 운영 120여일 만(8월7일 기준)에 80% 이상 달성했다. 이 가운데 마일리지 적립과 사용을 할 수 있는 도봉구민은 48% 정도, 2천여 명에 이른다. 구민 회원 4명 중 3명은 30~50대 여성이다. 참여 구민의 실천 활동 건수는 7만 회를 넘어섰고, 온실가스 감축량은 약 350t에 이른다. 적립 마일리지 1천여만 중 300만 정도가 도봉사랑상품권으로 전환됐다.
도봉구는 좋은 반응이 나올 수 있었던 요인으로 우선 생활 속에서 매일 실천할 수 있는 항목이 다양하다는 점을 든다. 서울시의 에코 마일리지나 승용차 마일리지가 전기와 가스·유류 등 에너지 저감에 중점을 둔 데 견줘 탄소공감 마일리지는 에너지뿐만 아니라 일상 활동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탄소 줄이기 실천에 마일리지를 주는 게 특징이다. 실천 항목에는 대중교통 이용, 장바구니 사용 등 평소 할 수 있는 손쉬운 활동부터 전기차 구매 등 본인 부담이 커 하기 어려운 활동으로 나뉘어 있다. 항목에 따라 적립할 수 있는 마일리지와 참여 주기가 정해져 있다.
인센티브로 지역사랑상품권을 주는 것도 장점이다. 마일리지는 최소 50부터 최대 2만까지 주며, 항목마다 줄이는 온실가스양도 알려준다. 1만 마일리지 단위로 스토어 메뉴에서 손쉽게 도봉사랑상품권으로 교환할 수 있다. 마일리지 사용처를 넓히는 방안도 고려되고 있다. 구는 지역생산 녹색제품 등 친환경 상품을 구매하거나 도시가스 요금 납부, 관용 전기·수소차 대여 서비스 이용 등도 검토하고 있다.
마일리지 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도봉구는 인센티브 재원 조달 방안을 마련해놓았다. 우선은 구의 기후대응기금을 활용한다. 기금은 구가 추진하는 공공태양광 발전사업의 수익금으로 조성된다. 이 과장은 “연간 1천만 마일리지의 인센티브를 기금으로 충당하며, 구민 회원 수가 급증할 때는 일반 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조례가 마련돼 있다”고 했다.
도봉구는 이제 막 싹을 틔운 탄소공감 마일리지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간다. 9월부터 반장들을 교육한 뒤 이들이 동네 이웃의 참여를 촉진하는 활동을 하게 한다. 협약을 맺은 북부교육지원청과 학교 환경교육을 통한 청소년들의 참여율을 높이는 방안도 강구한다. 디지털 소외 주민들도 참여할 수 있게 방법을 찾아간다. 무엇보다 주민 실천활동 촉진자 ‘도봉구 제로씨(Zero-C)’ 양성 교육에도 힘을 쏟는다.
회원 가입자가 증가하는 것과 더불어 실천 활동 건수도 늘어날 수 있도록 구는 이용자 의견이나 정부와 서울시 환경정책을 반영할 계획이다. 이종형 과장은 “‘엘리베이터 사용 대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 음식 포장 때 집에 있는 용기를 사용하는 것 등의 활동이 포함됐으면 한다’는 의견이 있다”며 “구민 의견을 반영해 실천 항목은 늘리고 주민실천활동 촉진자들을 꾸준히 키워나가면 눈에 띄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구는 활동 사진 확인과 검증을 꼼꼼하게 하고 있다. 취지에 맞지 않은 사진은 반려로 처리된다. 관리자가 전화나 전자우편 등으로 반려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구민 회원인 고인실씨도 행주 사진을 올린 뒤 반려된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었다. 고씨는 “키친타월 대신 행주를 쓴다는 생각에 올렸는데, 손수건 사용 항목이라 적용이 어렵다는 설명을 들었다”며 “관리자의 열의가 느껴져 덩달아 더 열심히 활동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서울시가 연 ‘2050 탄소중립 원팀(One Team), 서울’ 출정식 때 도봉구는 탄소공감 마일리지 제도를 우수사례로 발표하며, 다른 자치구에 시스템 공유를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 7월 ‘2023년 전국 기초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는 기후환경 분야 최우수상도 받았다. 오언석 도봉구청장은 “탄소공감 마일리지를 도봉구 탄소중립 정책의 대표 브랜드로 키워나가겠다”고 밝혔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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