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석학 "강력범죄 원인, 게임중독과 관계없어"

의료·교육 등 전문가, 논란 다뤄
허술한 정신보건 관리체계 지적

17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일대에서 게임문화재단 국제심포지엄 '게임 문화 게임 온 컬처(Game on Culture)'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윤선영 기자

게임문화포럼 기자 간담회

"강력범죄를 게임중독, 게임이용 장애로 귀결시키는 것은 원인을 쉽게 찾으려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블라단 스타서빅 시드니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17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일대에서 열린 게임문화재단 국제 심포지엄 '게임 문화 게임 온 컬처' 기자간담회에서 "연구에 따르면 끔찍한 사건의 뒤에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문제가 섞여 있다"며 "범죄의 원인을 게임이용 장애나 게임중독으로 지목하는 것은 쉬운 일반화"라고 밝혔다.

이번 국제 심포지엄은 제2회 게임문화포럼과 연계한 행사로, 게임문화재단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17일과 18일 양일간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공동 개최한다. 게임 과몰입, 게임이용 장애 등 게임을 둘러싼 논란을 의료, 교육, 인문사회, 예술, 스포츠, 방송 등 여러 분야의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한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국내외 게임 연구 분야 석학들은 강력 범죄의 원인을 게임으로 돌리는 행태를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국내에서는 현재 검찰이 신림동 흉기난동 살인사건 원인 중 하나로 게임중독을 언급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건의 본질은 게임을 많이 하는 사람이 게임을 흉내내서 사람을 살해했다는 게 아니다"라며 "우리나라 정신보건 관리체계가 허술해 제대로 된 진단이나 치료가 안돼 국민들이 불안해 한다는 게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강력범죄와 게임의 연결성을 크게 찾을 수 없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에스펜 올세트 덴마크 코펜하겐IT대 게임학과 교수는 "최근 미국에서 총기난사 사건과 관련한 연구가 있었는데 총기 난사범의 관심사를 조사했을 때 대부분은 게임을 즐겨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가해자들은 글쓰기, 시 읽기, 연극하기 등 문학적 장치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즐겨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문학이 굉장히 나쁜 것이라고 구별하지는 않지 않나"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국가의 경우 정부가 나서서 게임을 교육에 활용하는 사례도 제시했다. 쥬노 킴 왕립덴마크예술학교 시각예술학과 교수는 "스웨덴에서는 고등교육 과정에서 게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며 "만일 스웨덴 정부가 게임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장치라고 판단했다면 교육장치 중 하나로 활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 도입을 둘러싼 우려도 나왔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지난 2019년 게임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와 관련해 스타서빅 교수는 "게임이용 장애에 대한 진단 기준의 정확성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며 "진단 기준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얼만큼의 정당성을 갖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으며 과진단이나 오진단의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조현래 콘진원 원장은 "질병코드 도입과 관련해 연구와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어떤 사건이 생기면 희생양을 만들기가 굉장히 쉬운데 정확하게 무엇이 문제이고 원인인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여러 일들을 객관적으로 정리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윤선영기자 sunnyday72@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