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요동남으로 ‘중장년 남성 1인가구 고립’ 녹여내요”
홀로 사는 40~60대 남성 10여명 참가 “소통하며 식습관 바꿔요”
[서울&] [커버스토리] “서로 말 걸고 표정도 밝아져”…참가자 변화에 봉사자들 보람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들이 봉사
‘청년밥상 문간’ 이사장 600만원 후원
1회 3가지 메뉴 만들고 반찬 나누며
이웃과 관계 맺는 기반 만들어 나가
성북구 동선동에서 홀로 사는 50대 홍인태씨의 식탁이 지난봄부터 달라졌다. 동선동 주민센터 공유부엌에서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요리교실 ‘요동남’(요리하는 동선동 남자들)에 참가하면서부터이다. 이전에는 라면이나 편의점 도시락 정도였는데 제육볶음, 장조림, 닭볶음탕, 깻잎김치 등으로 반찬이 다양해졌다. 홍씨는 반찬이 다 떨어지면 배운대로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한다.
7월19일 오후, 홍씨는 6번째 요동남 수업에 참석했다. 얼마 전 허리질환 시술을 받아 두 달 만에 다시 나왔다. 홍씨는 “재활 치료 중이라 아직 통증이 있는데도 꼭 나오고 싶었다”며 “생전 처음 칼 쥐는 법부터 시작해 요리를 배웠는데 생각보다 재밌다”고 했다. 그는 “먹는 게 달라지니까 건강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요동남은 지난해 동선동 주민센터와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손잡고 중장년 남성 1인가구 주민을 위해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동선동은 대학가와 상권 밀집지역으로 원룸, 고시원이 많은 지역이다. 1인가구 비율은 66.4%로 이들 가구의 80%가 기초생활수급자다. 송현우 동선동 보건복지지원팀 계장은 “지역 특성상 고독사에 가장 취약한 중장년 남성 1인가구 주민이 늘고 있다”며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들과 요리를 매개로 이들이 집 밖으로 나와 사람을 만나고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요리교실은 지난해 11월 동선동 복지대학(주민 참여로 지역사회의 복지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서 1인가구 복지의제로 선정됐다. 올해 사업으로 2월부터 내년 3월까지 월 1회 열린다. 동선동 주민센터의 공유부엌 ‘다올’에서 진행되며,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총무 최점순씨가 요리 지도를 하고 위원 네댓 명이 돌아가며 봉사한다. 최씨는 “봉사자들은 식재료를 사 씻고 다듬는 일부터 요동남들의 조리와 반찬 나눔까지 두루두루 돕는다”고 했다.
비용은 지역의 후원으로 해결했다. 사회적협동조합 ‘청년밥상 문간’의 이문수 이사장이 600만원을 후원금으로 선뜻 내놓았다. 문간은 이웃 정릉에서 청년들에게 3천원짜리 김치찌개에 공깃밥을 무한 제공하는 식당으로 유명하다. 후원금은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정기탁으로 배분받았다.
참가자 모집 과정에서 동 주민센터는 대상자를 파악해 일일이 전화를 걸어 요리교실을 알리고 참가를 권유했다. ‘칼질해본 적 없다’ ‘집 밖에 나가기 싫다’ 등의 갖은 이유로 처음엔 모두 거절했다. 하지만 담당자는 포기하지 않고 안부 확인 전화를 할 때마다 참가를 권했다. 송 계장은 “‘한 번만 꼬~옥 나와보라’고 사정했다”며 “여러 차례 설득해 어렵사리 참가자 10명이 정해졌다”고 돌이켰다.
요리교실은 3개조로 나뉘어 3가지 요리를 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메뉴는 두부, 단무지, 깻잎 등 간단한 재료로 혼자서 해 먹을 수 있는 것 위주로 구성한다. 만든 음식은 개인 용기에 담아 집에 가져갈 수 있다. 송 계장은 “가정방문을 해보면 주거 여건이나 건강 등의 문제로 식사를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요리교실에 나와 몸 건강과 마음 건강 둘 다 챙길 수 있게 진행한다”고 했다.
어렵사리 집 밖으로 나오게 했지만, 이들의 닫힌 마음을 열기는 쉽지 않았다. 첫 수업 때 굳은 표정에 서로 데면데면 대했다. 다들 표정이 어두워서 요리 지도를 맡은 최씨가 ‘섬마을 선생님’ 같은 노래도 부르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회차가 쌓여가며 변화가 일어났다. 서로 조금씩 말을 트면서 인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눌 정도로 제법 가까워졌다. 무엇보다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최씨는 “서로 인사도 하고 표정이 밝아졌다”며 “조리하고 반찬 나누는 것을 돕는 것뿐만 아니라 이들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준 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달마다 수업 시간 알림 전화를 받는 분위기도 달라졌다. 참가자들의 소극적인 태도에 처음엔 요리교실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까 의구심마저 들었다는 송 계장은 “이제는 전화하거나 길거리에서 만나면 아주 반가워한다”며 “두드리면 열린다는 걸 새삼 느낀다”고 했다.
6회차 요리는 삼계탕, 단무지무침, 깻잎김치 순으로 진행했다. 홍씨를 비롯한 참가자 10명이 위생모와 앞치마에, 일회용 장갑을 갖추고 조리대 앞에서 섰다. 봉사자들이 미리 손질해놓은 재료를 썰고 양념장을 만들었다. 칼질이 아직 어설픈 이에게 팁을 살짝 알려주는 참가자도 있다. 파와 고추 썰기 등 칼질 솜씨가 저마다 차이가 있지만 눈빛은 한결같이 진지했다.
요리는 앞쪽 벽면 커다란 보드에 써진 내용에 따라 진행했다. 삼계탕은 닭 배 속에 찹쌀을 채우고 마늘과 대추를 넣은 뒤 한쪽 다리에 칼집을 내어 반대편 다리를 끼워 엇갈리게 꼬아줬다. 나머지 재료와 함께 커다란 냄비에 넣었다. 이날 참가자들이 만든 삼계탕은 푹 고아서 동네 홀몸 어르신에게 나눈다. 참가자들이 가져갈 삼계탕은 봉사자들이 오전에 만들어 미리 통에 담아뒀다. 최씨는 “어르신들에게 드리는 삼계탕이라고 참가자들이 다른 때보다 더 정성 들여 만드는 것 같았다”고 했다. 단무지무침은 단무지에 고춧가루를 묻혀주고 양념장을 만들어 무쳤다. 깻잎김치 양념장에 넣을 실파와 붉은 고추도 잘게 썰었다. 3조 봉사자인 김춘선씨는 “다들 처음보다 칼질도 잘하고 간도 직접 맞춰가며 양념장도 척척 잘 만든다”고 칭찬했다.
깻잎김치와 단무지무침은 각자 개인 통에 담았다. 이명훈씨는 “이걸로 20일 정도 기본 반찬으로 먹는다”며 “제육볶음이나 육전도 갖고 가 일주일 정도 나눠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 이정호씨는 “이전에 안주 없이 소주를 마셨는데 여기서 가져간 반찬으로 안주도 먹는다”며 “요리할 때 입맛에 맞게 양념은 덜 짜게 만든다”고 했다.
이날 요리는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마무리됐다. 처음엔 3시간 넘게 걸렸지만, 이제는 익숙해져 한두 시간 안에 대개 끝난다. 조리를 끝내고 강당으로 돌아와 소감 나누기 시간을 가졌다. 최씨가 “오늘 수업은 어땠나요?”라고 묻자 다들 “재밌었어요”라고 답했다. ‘메뉴가 매번 바뀌니까 올 때마다 기대하게 된다’ ‘여기 나오는 것만 해도 좋다’ 등의 반응도 있었다.
조리 방법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홍씨는 “집에서 단무지무침에 고추장을 넣었더니 물이 생기던데, 오늘 고춧가루를 넣는 걸 알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집에 가서 혼자 양념장 만들면 매번 실패하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은가”라는 그의 질문에 최씨가 “주부들은 감으로 만든다”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잦아냈다. 최씨는 “하다보면 감이 생긴다”며 “궁금할 때마다 언제든지 질문해달라”고 덧붙였다.
참가자들이 말문이 트이면서 메뉴 정하기도 함께 했다. 최씨가 “다음달 메뉴는 부추김치를 생각하고 있는데, 혹시 드시고 싶은 게 있는지요?”라고 운을 뗐다. 김홍태씨는 오이소박이를 말하며 “요즘 장마와 폭염으로 농산물 가격이 많이 올라 재료비도 많이 들 텐데…”라며 조심스럽게 말끝을 흐렸다. 혈액순환에 좋은 양파장아찌를 해보자는 의견도 있었다. 이전에 했던 육전이 정말 맛있었다는 한 참가자의 말에 최씨는 “가스 불쓰기가 쉽지 않아 대신 부추전으로 한번 해보자”고 정리했다.
이날 수업에는 이승로 성북구청장도 참가했다. 그의 요리교실 참가는 이번이 세 번째다. 참가자들과 조리를 같이 하고 마무리까지 함께 했다. 조리할 땐 1조 조원으로 참여했다. 능숙한 칼질 솜씨와 깻잎에 양념장을 꼼꼼하게 발라주는 모습은 조원들과 봉사자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이 구청장은 “여름철에 깻잎김치나 단무지무침은 입맛 돋우는 좋은 반찬이니 집에서 잘 챙겨 드세요”라고 당부하며 개인 반찬 통에 꾹꾹 눌러 담아줬다.
이 구청장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중요한 일이니 잘 고쳐놓은 성북천변을 자주 이용하자”며 “구민 걷기 대회나 동네 아침 청소 등도 같이하면 참 좋다”고 알렸다. 소감 나누기에서도 이 구청장은 “요리교실에서 사람도 만나고 반찬도 가져가 먹는 즐거움도 있으니 빠지지 않고 잘 참석해달라”며 “주민자치 프로그램도 눈여겨보고 취미생활도 하면 좋겠다”고 권했다.
요동남 요리교실은 여름휴가 없이 8월에도 계속된다. 요리 지도를 하는 최점순씨는 “참가자들이 매달 (요리교실을) 기다려 빠질 수 없어 올해는 개인 휴가는 포기하기로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더위에 입맛을 잃지 않게 하는 반찬을 만들려 한다”며 “요동남과 함께 연말에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요리 대회에도 나가볼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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