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조인성의 돈가스 배달, 진정 싸구려인가('무빙')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3. 8. 1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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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빙’ 조인성과 한효주, 이 인간적인 초능력자들의 진짜 특별함

[엔터미디어=정덕현] "나르는 돈가스." 하늘을 나는 초능력을 가진 김두식(조인성)은 야근하는 이미현(한효주)에게 그 능력을 이용해 돈가스를 배달해준다. 함께 남산 돈가스를 먹던 미현이 배달이 되는 게 중국음식밖에 없다며 돈가스도 배달해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을 잊지 않고 있던 김두식이었다. 그는 돈가스를 포장해 날아와 5층 건물 창으로 미현에게 그걸 전해준다.

이 장면은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이 초능력자들을 통해 그리려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 심지어 하늘을 나는 능력을 가진 이 김두식이라는 초능력자가 진짜 하고픈 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야식을 배달해주는 것이다. 그 능력으로 누군가를 저격하고 제거하는 그런 일이 아니라.

그건 미현도 마찬가지다. 중국 연변의 한 호텔에서 조선족들을 위한 행사를 빙자해 이중첩자를 잡아낸다는 명목으로 안기부의 주도하에 끔찍한 살육을 자행할 때 미현은 차마 그들을 향해 총을 쏘지 못했다. 최루탄 대신 섬광탄을 실수처럼 던진 후, 모두가 잠시 앞을 보지 못하는 틈을 타 잠긴 문을 총으로 쏴 열어줌으로써 저들을 도망치게 해줬다.

그때 호텔 바깥에는 '독수리'로 불리는 김두식이 허공을 날며 빠져나오는 조선족들을 살해하게 되어 있었는데, 그 역시 총을 쏘지 못했다. 끔찍한 살육 속에서 미현이 했던 행위를 창 밖에서 보며 그는 멍하니 멈춰 서 있었다. 총을 쏴도 죽이기보다는 작전수행을 위해 적을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부위로만 쏘는 김두식은 휴머니스트였다.

남다른 오감의 소유자. 미현은 엄청난 시력과 청력으로 보지 못하는 걸 보고 듣지 못하는 걸 듣는 능력을 가진 존재지만, 그 능력으로 김두식의 진심을 들어준다. 놀라운 청력으로 그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듣고, 엄청난 시력으로 그가 돈가스를 배달해준 후 남산 타워 꼭대기에 앉아 김밥을 먹으며 행복해하던 걸 바라본다. 어두운 세계에서만 살아 사람 만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며 진심을 이야기하는 김두식에게 미현은 그래서 "다 안다"고 말해준다.

초능력이 아니라 공감능력. 드라마 앞부분에 미현이 아들 봉석(이정하)에게 했던 "사람의 진짜 능력은 공감 능력"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건 <무빙>이라는 초능력자들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초능력이 보여주는 스펙터클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사람의 이야기'라는 걸 말해준다.

<무빙>은 우리의 비극적인 현대사에 안기부가 데리고 있던 초능력자들이 개입했다는 상상력을 더해 넣었다. 1987년 있었던 칼기 폭파사건이나, 김일성 사망 같은 굵직한 현대사가 배경으로 들어와 있고, 이 두 사건 속에는 하늘을 나는 초능력자 김두식 역시 들어가 있다. 안기부 민용준(문성근) 차장이 반대했음에도 김두식은 칼기 폭파사건을 막기 위해 현장으로 날아가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또 모종의 명령을 받고 김두식이 사라진 사이, 김일성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이러한 한반도의 공기를 바꿔 버린 현대사를 초능력자 김두식의 이야기로 엮어내면서도 드라마가 집중하는 건 이 인간적인 초능력자의 면모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이들은 그 능력으로 인간을 구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을 이용해 권력을 쥐려는 민용준 차장 같은 인물은 그걸 "싸구려 휴머니즘"이라고 매도한다. 하늘을 나는 자가 돈가스 배달을 해줘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고, 남다른 청력과 시력을 가진 자가 타인의 진심을 읽어 그들을 위로해주는 그런 행위를 '싸구려'라 치부한다.

남다른 능력(힘, 초능력)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쓰여야 하는 걸까. <무빙>이 질문하고 있는 건 바로 이것이다. 한때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던 안기부에 의해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고문당하고 심지어 안타까운 죽음까지 맞이했던가. <무빙>의 휴머니스트 초능력자들의 상처 가득한 이야기들은 그래서 민용준 차장 같은 비정한 인간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막강한 힘의 진짜 특별함은 힘 자체가 아니라 그걸 쓰는 마음에 달려 있다는 걸 이 대비는 말해준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디즈니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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